정현종 초기 시 연구

Abstract

이 연구는 정현종 초기 시에 나타난 물과 공기 이미지를 중심으로 초기 시에 담긴 시의식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등단 초, 정현종은 현란한 시적 이미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나며 시인의 사고방식 및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바슐라르의 4원소론과 상상력 이론을 바탕으로 접근하였을 때, 정현종은 죽음에 대한 사색을 통하여 존재의 불안과 고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부정적인 감정에 몰락하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와 교감하는 방식으로 세계와의 합일을 꿈꾸며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존재의 중요한 본질이라는 사유를 깨닫게 한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비, 피, 눈물, 술, 안개, 바다’ 시어를 중심으로 물 이미지의 변용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정현종의 초기 시는 죽음에서 출발하여 삶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인의 변증법적인 사유를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유한한 육체와 시간에 대하여 허무를 느끼고 비관적인 생각을 드러내지만, 이는 자기 삶의 자세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자아 성찰은 관념으로 그치지 않고, 시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특히 시인이 모든 사물에 대하여 우위를 두지 않고, 동등한 존재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용해와 융합의 상상력을 통한 교감의 방식으로써 시에서 드러난다. 이처럼 정현종은 죽음으로 한계 지어진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도 허무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상상력을 통하여 생(生)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영원성을 꿈꾸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제Ⅲ장에서는 ‘하늘, 공중, 바람, 날개, 새, 춤, 별’ 시어를 중심으로 공기 이미지의 변용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정현종은 하늘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연을 몽상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적 이미지 속에는 자연과 생명을 예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속에서 그는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색하는 태도를 보인다. 비록 초기 시에서 존재의 본질은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지만 그 기저에는 자유에의 갈망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시인은 존재적 한계로 인한 비관적 의식과 좌절을 드러내며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정현종은 결코 현실이라는 공간을 온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이상향을 지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기다림의 자세로 자신과 세계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모색하고자 하는 정현종의 시정신이 투사된 것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정현종의 초기 시는 특정 시기를 넘어서 인류의 무의식에 잠재된 죽음에 대한 몽상과 그로부터 불안과 생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고뇌를 담고 있다. 또한,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물과 공존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시의식은 시인의 자유로운 물질적, 역동적 상상력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나며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울림’을 느끼게 한다. 즉 그의 시는 매몰된 일상 속에서 몽상의 휴식을 제공하며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