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소설에서의 피난지 공간과 주체형성

Abstract

본고는 피난 행위가 손창섭 문학 전반의 구성 원리라고 본다. 이에 따라 피난 행위와 피난지를 중점으로 살펴볼 것이다. 피난지는 정착의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피난길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즉, 피난지라는 공간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피난길을 떠나는 인물들은 장소의 이동에 의해 우연한 만남을 이룬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는 소설 속 작중인물을 창조하는데 바탕이 된다. 따라서 주 인물들은 인물관계 형성에 관해 애정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적으로 맺어진 피난지 속 인물들은 주 인물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는 사회와의 동일성을 이루려는 피난민의 행위이다. 이에 따라 주 인물들에게도 간섭을 행한다. 우연한 만남이 반복될수록 피난민들은 사회와의 동일시를 추구하며, 이에 따라 간섭의 빈도수도 높아진다. 또한 내부적으로 주 인물들이 갖는 연민은 죄의식으로 발동하여 그들을 피난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주 인물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피난지는 수용소와 유사하다. 위험인자를 예방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세워진 수용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금의 형태로 변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피난지 공간 역시 원래부터 있었던 공간이 아닌 사건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또한 피난지는 인물들에 의해 그 공간에 귀속하게 되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금의 형태로 변모하는 수용소와 유사하다. 그러나 주 인물들은 끊임없이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행한다. 그 중 한 방법으로 타자와의 대립을 통한 정체성 구축이 있다. 처음부터 예외적인 존재로써 살아가던 주 인물은 이러한 성질을 극단으로 몰아 폭력적인 인물로 나아간다. 주 인물들은 폭력성을 통해 일차적으로 주변 인물들에게 위협을 가하여 타자의 간섭으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또한 타자가 접근하지 못하는 자아를 형성함에 따라 주 인물은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형성했다는 쾌감을 얻기도 한다. 주 인물들은 공간을 떠남으로써 실패의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타자와의 대립으로 맺은 정체성은 타자 없이 맺을 수 없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방으로부터 직접적인 도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난지의 성질을 지닌 방에서 나온다는 것은 가장 간편하고 직접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피난지가 피난 행위의 과정이라는 점을 볼 때, 방으로부터의 도피는 방이 피난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피난행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암시하게 한다. 주 인물들이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할수록 공간에 머물게 되는 실패로 귀결될 뿐이다. 전 문학에서 실패를 보여주는 것은 서술자의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서술자는 실패하는 주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행위를 실패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우연성의 반복은 주 인물들을 공간에 귀속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도피의 실패는 이들의 주체성을 만들어 주었다. 주 인물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에 따라 서술자는 실패하는 주 인물을 통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추게 된다. 손창섭 문학은 역사소설을 통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권력과 관련해 현실 비판을 수행한다. 도한 재일교포의 디아스포라를 그린 유맹을 통해 끊임없이 떠돌아다니게 되는 상황을 그려 피난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이것이 손창섭 문학이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