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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문학 속 薛濤의 형상

Title
한국 한문학 속 薛濤의 형상
Other Titles
Xuetao’s shape at the Chinese-language literature of Korea
Author
이량
Alternative Author(s)
Li, Liang
Advisor(s)
이승수
Issue Date
2016-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한국 한문학 속에 수용된 설도(薛濤)의 형상을 검토하여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설도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널리 이름을알린 여성 시인으로 그녀는 중국역사상 재능이 풍부했던, 여성 시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설도는 당시 여성 시인의 대표로서 용모와 자배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재능과 지혜가 있었고 음률에 정통했으며 다재다능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많은 문인들과 시를 통해 교류하면서 인연을 맺었으며, 당시 관료와 명사들과 밀접하게 왕래하고 친밀한 관계를 쌓았다. 그리고 많은 작품들을 후대에 남겨 많은 이가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시의 풍격이 호방하여 여타 일반적인 여성 시인들이 규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답답함을 표현해왔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설도는 당대(當代) 여성 시인의 대표로서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와 세상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녀의 시는 전고(前古)의 훌륭한 작품들을 따르던 기존의 시풍(詩風)에서 탈피하여 새로이 즐거움을 첨가하였기 때문에 사회의 명사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그녀는 안목과 견해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역대 학자들이 그녀의 작품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중국의 시 역사상 많은 문인과 명사들이 그녀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한중(韓中) 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 나라로서 동일한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 한국의 문학은 스스로의 특색과 풍격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문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고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중 양국은 국경이 접해 있었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밀접한 관계가유지되어 왔다. 특히 문화 방면에서 한민족은 고유의 언어를 가졌고, 독특한 정신적 문화를 수립하였지만, 문자를 발명한 역사가 중국보다 늦었기 때문에 고조선 시대부터 한자와 중국 문학의 형식을 수용하여 자국의 문예 작품을 창작하는데 활용하였다. 한국의 문학사는 고조선, 삼국 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 등 여섯 단계로 나뉘는데, 이 여섯 단계의 문학사 중에서 고조선부터 고려까지는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이었으므로 한자를 빌려 표기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고유 문자(신라 향가, 고려 가요 등)는 순수한 한문학과 공존했으며, 조선의 네 번째 왕조인 세종 24년(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나서부터야 비로소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는 순수한 한국 문학(시조, 가사 등)이 한문학과 함께 공존하고 발전되어 왔다. 각 시대별로 이루어진 한국의 한문학 발전은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고조선 시대에 악부시를 수용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한문과 오언고시를 수용하였고, 이 때 유교, 불교, 도교 등 선진 문화 사상을 수용하여 국가 발전의 토대로 삼았으며, 그 각자의 특징을 가진 문화가 형성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언 및 칠언 근체시와 변려문(駢儷文)을 받아들였는데,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삼국을 통일하였고, 따라서 당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하였다. 한국 문학사에 기록된 사실에 근거하면 신라 왕실은 많은 학생들을 당나라로 파견하여 오언 및 칠언 근체시와 4·6 변려문을 배우도록 했다. 박인범의 칠언율시, 최치원의 변려문 및 기타 오언과 칠언 율시 등은 당시 신라 문단의 현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관도(貫道)와 재도(載道)의 고문(古文)을 수용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과 기타 한문학을 수용하였다. 한문학으로 부터 장기적으로 받은 영향과 신라 시대에 시작된 당나라와의 빈번한 교류로 인해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인 설도가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알려졌을 가능성을 제공했다. 따라서 설도에 관한 기록도 점차 증가했던 것이다. 한국고전문학사에서 많은 문인과 명사들은 이들의 숱한 문학 작품 속에서 설도의 생애를 소개하고 설도전(薛濤箋)과 설도분(薛濤墳)을 시의 소재로 활용하였으며, 설도의 시를 짓는 재능에 대해 칭송하였다. 이처럼 여러 작품으로 남겨진 설도의 흔적으로 인하여 한국 한문학 속 설도의 형상을 탐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한중 양국의 고전 시 분야는 서로 유사한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단지 작품으로 그치지 않는다. 문화가 대체로 비슷했던 두 나라는 고전 여성 문학에 대한 연구에서도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한중 고전 여성 문학 연구가 보여주는 이러한 지점들은 설도의 문학적 수용 내용에 대해 연구하는 데에도 기초 자료와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보고(寶庫)의 역할을 했다. 한국 한문학 속 설도의 형상을 연구하는 것은 설도의 문학적 수용 현상을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사의 한 장면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아시아 문학사의 보편적 현상까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25790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8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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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LANGUAGE & LITERATURE(국어국문학과) > Theses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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