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정제에 기한 김소희 <흥보가>의 음악적 특징

Abstract

오늘날 김소희의 소리를 가리켜 만정제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만정판 춘향가>는 김소희가 여러 스승의 소리들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견해에 따라 새롭게 짠 것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에 의하면 만정제 판소리에는 <춘향가>를 비롯하여 <심청가>와 <흥보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김소희의 <흥보가> 역시 <만정판 춘향가>와 같이 다른 소리제와 차별성을 지닌 소리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김소희의 <흥보가>를 박록주・박초월과 비교하여 그 음악적 특징을 밝히고, 나아가 김소희의 어떠한 음악적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고찰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소희 <흥보가>의 사설 구성은 박록주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으며, 장단 사용 역시 박록주와 동일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김소희는 박록주의 것을 그대로 흡수하여 <흥보가>의 기본 틀로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김소희의 <흥보가>는 악조 활용에서 박록주나 박초월과 마찬가지로 계면조를 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록주나 박초월이 활용하였던 평조는 보이지 않으며, 특히 ‘박타령’에서는 두 창자에 비해 우조를 많이 사용하고, 일시적 변청을 활용하여 화려한 악조를 구사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셋째, 김소희의 전체적인 선율형은 박록주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시김새와 사이음 등을 많이 활용하여 박록주보다 화려하게 진행하는 점에서는 박초월의 것과 가까운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꺾는음의 잦은 사용이나 구절마침에서 소리를 길게 끄는 점 등을 통해 김소희의 소리에 계면조적인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김소희의 <흥보가>는 박록주와 유사한 음악적 구성 및 선율 진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소희는 동편제 소리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소희는 20세 때부터 오랫동안 정정렬, 박동실 등에게 서편제의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이러한 학습배경으로 인하여 김소희의 <흥보가>에서는 계면조의 전형적인 특성과 화려한 선율형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결과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김소희의 <흥보가>는 박록주의 소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박초월과 같은 서편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흥보가>의 눈대목인 ‘박타령’ 대목에 자신의 스타일을 가미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즉, 김소희는 ‘박타령’에 초점을 맞춰 자신이 즐겨 구사하는 우조의 활용, 변청의 사용, 만정의 다양한 선율진행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흥보가>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는 <흥보가>를 구성하기 위해 각 대목의 상황에 적절한 소리들을 최대한 흡수하면서 자신의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구사하였다. 기존 소리의 선택과 배제, 추가와 삭제 속에서 자신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흥보가>를 만들어갔고, 오늘날 그 모습이 남아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만정제라는 특성과 결부시켜 본다면, 김소희의 <흥보가> 역시 만정판이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