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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일본의 조선인 기리시탄 연구

Title
근세 일본의 조선인 기리시탄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Korean Christians in Pre-modern Japan : Focusing on Ota Julia “A Korean woman who became the guardian deity of Kozushima”
Author
김미라
Advisor(s)
박규태
Issue Date
2023. 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오타 쥬리아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피로被虜조선인 중의 한 사람으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그의 부인 유스타 부부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유키나가는 기리시탄 다이묘大名였으며 유스타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오타 쥬리아는 유키나가 부부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아 쥬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지게 된다. 유키나가가 세키가하라関ケ原전투에서 패하자 고니시 가문은 몰락하였고, 오타 쥬리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에야스의 궁정 안에서도 신앙을 이어가던 오타 쥬리아는 배교하라는 이에야스의 명을 거역하여 고즈시마神津島라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러나 오타 쥬리아는 유배지인 고즈시마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살면서 자선을 베풀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그곳 사람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았다. 고즈시마에는 ‘호토사마宝塔様’라 불리는 그녀의 묘가 있고, 섬 정상의 아리마 전망대에는 오타 쥬리아를 기리는 거대한 흰색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주민들은 섬에서의 그녀의 삶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매년 ‘쥬리아제ジュリア祭’라는 마쓰리를 열고 있는데, 2019년에 50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전염병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2020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 51회부터 현재까지 이 마쓰리는 열리지 않고 있다. 1971년에 시작된 쥬리아제는 초기에는 한일친선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일본 내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많은 가톨릭신자들과 관계자들이 쥬리아제가 열리는 기간인 5월에 고즈시마를 방문하였고, 서울의 절두산 성지에 오타 쥬리아의 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교황청을 비롯하여 한일 양국의 가톨릭교회 관계자들은 고즈시마에서의 그녀의 신앙생활과 순교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그런데 나가사키와 오사카 등에서 오타 쥬리아의 행적이 발견되었다는 서한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알려진 바와는 달리 그녀가 고즈시마에서 순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88년 루이스 메디나가 『머나먼 까울리遥かなる高麗』에 고즈시마를 떠나 본토에서 활동하고 있던 오타 쥬리아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호세 데 산 하신토 살바네스와 프란치스코 파체코 신부의 서한을 공개하였다. 서한이 공개되자 로마교황청과 한국측 가톨릭교회는 오타 쥬리아가 유배지인 고즈시마에서 순교하였다는 것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결정을 내리고, 절두산 성지에 세웠던 오타 쥬리아의 묘비도 철거하였다. 이후 한국측 가톨릭교회는 쥬리아제의 참석도 공식적으로는 제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 때는 1,000여 명에 이르렀던 쥬리아제의 참가인원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고즈시마의 주민들은 오타 쥬리아를 여전히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쥬리아제의 개최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으나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아직도 쥬리아제에 참가하기 위해 고즈시마를 찾고 있다. 한편 공식적인 참가를 제한하고 있는 한국측 가톨릭교회와 달리 일본측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를 비롯하여 많은 신자들이 지금도 해마다 쥬리아제에 참가하고 있다. 본고는 고즈시마에서 조선인 기리시탄인 오타 쥬리아가 섬사람들의 수호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일본 문화의 영향이 상당히 작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어 한때는 순교자로 추앙 받으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가톨릭의 가교 역할까지 했던 오타 쥬리아에 대한 양국의 시각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한일 양국이 함께 유배지에서 사망한 오타 쥬리아를 순교자로 추앙했던 때와는 달리, 본토에서의 활동이 드러난 서한이 공개되어 그녀의 사망에 의문이 생긴 이후에는 한국측과 일본측 가톨릭교회의 대응에서 온도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본고는 양국의 문화적 이질성이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한일 양국에서 가톨릭의 순교자이자 수호신으로 추앙 받았던 오타 쥬리아를 현재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 두 나라의 전통적인 관습과 문화에서 유래한 측면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51637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7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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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JAPANESE LANGUAGE AND CULTURE(일본언어·문화학과) > Theses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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