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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와카미노루(梅若實)의 노(能) 부흥에 관한 연구

Title
우메와카미노루(梅若實)의 노(能) 부흥에 관한 연구
Author
황석주
Advisor(s)
김영철
Issue Date
2010-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우메와카 미노루(梅若実 , 이하 미노루)는 유신기에 다른 5流의 이에모토(家元)나 우메와카가(梅若家)의 노(能) 연기자들이 徳 川幕府와의 의리를 내세워 연고 없이 東京을 떠날 때에도 그대로 남아 게이코노(稽古能)를 계속한 인물이다. 태생이 能 연기자 집안도 아니고, 그가 양자로 간 梅若家는 간제류(観 世流)의 쓰레(ツレ)역을 담당하는 세력이 크지 않은 能 가문의 연기자의 한사람이었다. 미노루는 젊었을 때부터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고, 그러한 경험 때문에 배가 된 결단력으로 幕末에서 유신기까지 혼란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明治維新으로 能 연기자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져서, 能라는 예능 자체가 存亡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도 공연을 계속하여 能 부흥의 기초를 구축했다. 또 유신기 이전에는 神社나 사찰, 권력자의 주거지에 설치되어 있던 能 무대를 자택에 설치하고, 그때까지 원칙적으로 비공개 공연이었던 能를 관객에게 유료로 공개하여 能 연기자의 생활 안정의 길을 연 것은 미노루의 큰 공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유신이후 의례용 예능(式樂)이라는 보호 장치로 부터 밀려난 能의 생계를 미노루는 관객에게서 찾았다. 미노루가 확보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관객의 존재에 유신기 能 부흥의 기반이 있었다.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었던 예능을 보고 즐기면서, 그 예능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예능을 수련하고 있는 연기자에게 수련의 장소를 조언하거나 소박한 가설 무대를 걱정하여 정식 무대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준 초기 몇몇 能 애호가가 없었다면 유신기 能의 부흥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 華族이나 旧 大名, 천황가 등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계층이 비전문 연기자이자 관객으로 能를 애호했다는 것, 그리고 미노루의 일기 기록의 표현처럼 전대미문의 만원사례를 기록할 만큼 그가 개최하는 공연에 관객으로 와 공연을 관람한 일반인 관객의 존재 없이는 유신기 能 부흥은 생각하기 어렵다. 관객을 확보한다는 것은 能 연기자들에게 있어 생사의 문제였으므로 미노루는 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볼거리가 많은 곡, 누구나 사랑할 만한 캐릭터가 들어 있는 곡, 또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本說인 곡 등을 주로 상연했다. 그러한 노력과 궁리로 우타이본(謡 本)으로 能라는 예능에 이미 익숙한 관객과 새로운 시대에 관람료만 지불하면 공연장에게 能라는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된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확보했다. 이처럼 미노루는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사랑받음으로 ‘인기’ 를 얻어 能가 芸의 단절이라는 위기에서 새 시대의 ‘娛樂’으로 거듭나 오늘날에 이르게 한 공헌자였다고 확언할 수 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42320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14024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S](대학원) > JAPANESE LANGUAGE & LITERATURE(일어일문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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