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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 건국 전후 중국 민족민간무용의 변화

Title
신중국 건국 전후 중국 민족민간무용의 변화
Other Titles
The Change of Folk Dance around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Focusing on the Conflict between New and Old Culture (1915~1966)
Author
쫑이�M
Alternative Author(s)
Zhong, Yi Xun
Advisor(s)
김운미
Issue Date
2010-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국문초록 중국의 현 민족민간무용은 공연양식이나 스타일 면에서 원형적 형태를 유지한 채 민간에서 행해지던 ‘중국 원래의 민족민간무용’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5·4 신문화운동 시기에 신중국 건립 후 ‘17년’간(1915~1966) 신구문화가 충돌하는 와중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발생한 격변과 그 양상, 그리고 구문화체제하 중국 원래의 민족・ 민간무용의 변모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향후 중국무용의 보완과 계승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신중국 건립 이전(1915-1949) 리진후이는 자신의 아동가무극에 전통희곡과 민간가무에서 나타나는 중국적 요소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무용예술의 진정한 독립화를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한편 우샤오방은 무용을 통해 중국 문화적 특징과 중국적 이야기를 담아냈고, 어찌 보면 중국 무용예술의 독립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틀은 그의 작업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이아이롄은 변경 지역의 민속 활동과 지방 희곡에서 무용 부분을 창작품에 담아냈고 그의 이러한 작업은 중국무용 예술의 독립성을 심화시켰다. 혁명근거지에서 개조된 신민간 가무 예술의 주요 형식은 소비에트지역시기 가무와 옌안시기의 신앙가예술을 바탕으로 했다. 신중국 건립 이후(1949-1966) 소비에트 정권하에서 발전한 소련 민간무용과 발레는 사회주의 중국의 무용예술 발전과 그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최승희는 중국 고전무용의 수집 작업과 북한식 사회주의 특색을 갖춘 무용을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녀의 작업은 신중국 건립 이후 민간무용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건국 후 ‘17년’ 동안 민족형식을 확립하고 극장화의 발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국 민족・ 민간무용의 테마는 혁명근거지 시기의 그것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주로 정치적, 전통적, 민속적 주제가 대부분이었다. 원래 기존의 동작과 비교해보면 일부 극장화된 민족민간무용의 무용동작은 신사회의 심미적 요구, 조형에 대한 요구, 표현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면서 변화했고, 후에 이것은 각 민족민간무용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세 가지 형식이 있었는데 무용동작을 재형상화, 다른 풍격적 동작과의 결합, 기존 민속적 의미의 변화가 그것이다. 무대미술, 특히 무대배경은 사실적 묘사와 상징성이 부각되었다. 각색된 민족민간무용과 무용소재들로 재창작된 무용은 지방의 곡조와 민가가 주를 이루었으며, 심화되는 계급투쟁에 발맞춰 음색・ 선율・ 악기가 배치됐으며 때론 과장을 통해 인물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배척은 사회주의문화 형성의 기원에 배타성과 폭력성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배척은 구문화체계의 전통 민족민간무용에 형식적 특징을 계승하는 한편,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사회주의 낭만주의 이 두 창작방법을 위주로 사회주의 특색을 가진 극장화 중국무용예술을 발전시켰다. 신구문화가 길항하는 과정에서 구문화 체계에 속한 민족・ 민간무용을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이러한 인식은 그것을 ‘제고’와 ‘발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달리 말해, 신문화의 체계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는, 그리하여 신문화 발전에 부합하는 ‘이기적 재창조’를 한 것이다. 기존 사회체제에 속하던 전통 민족민간무용 종사자들은 시종 전통 민족・ 민간무용을 수집, 정리하였다. 이들의 작업은 보다 엄밀한 보전 방식을 택하지 않고 단지 무용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한 것에 가까웠다. 신중국 건립 전후 무용예술 종사자들은 원래의 민족민간무용에 정치성을 도입, 상투적인 정치선전과 사회동원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다시 말하면, 무용예술이 도구화되면서 심미적 가치는 퇴색해갔고, 이는 곧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신중국 건국 이후 전국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예술의 정치화 현상은 ‘예술이 혁명에 봉사하고 군중에 봉사한다’는 슬로건을 통해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정치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그러한 현상이 관객의 심미관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관객성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민간무용이 극장화되는 과정에서 무용예술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중국 민족민간무용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민족민간 무용예술을 비판한 동시에 자각적인 정치적 인식을 통해 민족민간무용 예술을 개조했던 매우 중요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민간 무용예술이 극장화하는 과정에서 극장화의 예술적 기준에 준거, 민족민간 무용을 허술하고 단조롭게 만들었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업은 민족민간문화의 민족성 보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핵심어: 중국무용, 변화, 신문화, 구문화, 충돌, 신중국 건국 이전, 신중국 건국 이후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41470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1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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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DANCE(무용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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