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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서의 계몽(啓夢)과 구망(救亡) -"호풍사건(胡風事件)"을 중심으로-

Title
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서의 계몽(啓夢)과 구망(救亡) -"호풍사건(胡風事件)"을 중심으로-
Author
위행복
Keywords
호풍; 주관전투정신; 연안문예좌담회; 계몽; 구망; 胡風; 主觀戰鬪精神; 延安文藝座談會; 啓夢; 救亡
Issue Date
2005-12
Publisher
중국어문학회
Citation
중국어문학지, v. 19, Page. 253-280
Abstract
지금까지 살펴본 바, 胡風事件은 人間解放과 革命에 접근하는 방식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국을 핍박하는 국내외의 세력들과 투쟁을 계속하는 과정에 처함으로서, 그리하여 ‘救亡’의 사상과 그것의 실천에 경도된 시대에 처했으면서도, 胡風은 五四 新文化運動의 ‘啓蒙’ 理想을 고집했다. 그는 ‘政治’보다는 ‘文學’ 자체를 통한 역사의 진보를 꿈꾸었으며, 社會主義 寫實主義 문학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계몽가의 理想을 용납하지 않았다. 목전에 놓인 과제를 군사적 투쟁으로 풀어가는 혁명의 와류 속에서, 변혁을 주도하는 정치 세력의 요구에 따르는 문학 실천을 통해 혁명에 기여하는 것이 胡風 시대 문예계 일반의 주류적 입장이었고, 胡風은 혁명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치부되었으며, 시대의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1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외우내환에 시달려 온 중국에서는 늘 ‘救亡’의 논리가 ‘啓蒙’의 理想을 압도했다. 폭력은 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되었으며, 무력투쟁의 담당자들과 그에 협조하는 세력이 보다 역사의 진보를 담보할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숱한 계몽가들이 혁명가로 轉化했으며, 역사를 주도했고, 제국주의 열강과 국내의 착취세력을 극복함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공헌을 했다. 문제는 시대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혹했던 시대의 논리가 계속적으로 관철되었다는 데 있었다. 군사적 투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개발된 논리들이 건국 이후의 중국에까지 그대로 적용됨으로서, 인간 해방의 이념이고 실천 방식일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구속과 억압의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엄혹한 조건하에서 개발되었던 ‘救亡’이라는 이념에 매몰되어 있던 중국의 지식계는, 전쟁 이후에도 끊임없는 확장과 스스로의 존재 확인을 필요로 하는 ‘政治’의 요구를 비판없이 추수했으며, 결과적으로는 봉건적 잔재의 청산을 방기하게 되었고, 인간 해방의 원리를 부정하는 세력의 방조자가 되었다. 延安時期라는 가혹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문예 이론을 건국 이후의 문예계 역시 아무런 회의도 없이 수용함으로써, 胡風事件이라는 비극이 야기되었던 것인데, 지식계의 이러한 경향은 文化大革命이라는 재난 초래의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URI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542414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11980
ISSN
1226-73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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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ANGUAGES & CULTURES[E](국제문화대학) > CHINESE STUDIES(중국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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