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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 문학에 나타난 '부재의식' 연구

Title
김남천 문학에 나타난 '부재의식'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onsciousness of Absence' of Kim Nam-cheon's Literature
Author
김준성
Alternative Author(s)
Kim, Jun-sung
Advisor(s)
서경석
Issue Date
2019-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김남천 문학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김남천이 소설 속 인물들의 방황을 통해서 식민지 체제의 균열을 드러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러한 논의는 김남천 소설이 가진 다양성과 애매함을 풍부하게 분석했다는 성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다소 소극적인 주장이 되기 쉽고, 김남천 문학만이 갖는 특이성을 지나칠 수 있다. 본고는 김남천 문학이 가진 특이한 모습인 ‘부재의식’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김남천의 ‘부재의식’은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김남천은 한 비평에서 ‘부재의식’을 철저하게 응시할 것을 강조하며, ‘부재의식’을 빌미로 허무주의에 안주하려는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제퇴선」, 「요지경」, 「포화」, 「녹성당」 등의 전향소설에서는 김남천 그 자신이 비판한 허무주의적 요소가 나타난다. 이 소설들에서는 과거에 ‘주의자’였던 인물들이 등장해, 생활의 무기력함 속에서 자신의 비극적인 처지를 드러낸다. 위 소설 속 무기력한 지식인 주인공들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시련과 고통을 받는 것처럼 묘사된다. 가련한 처지는 그에게 숭고한 아우라를 부여한다. 즉 위 소설들에서의 무기력한 모습, 허무주의적 모습은 주인공을 ‘비극적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김남천 자신도 자신의 고발문학이 진정으로 자기를 고발하는 문학이 아니라 “자아중심의 문학”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반해 진정으로 비극적인 것은 비극적인 처지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허무주의적 인물이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긍정했다면, 허무주의적 틀을 상실한 주체는 자기 정체성마저 부정된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전향소설과 「경영」, 「맥」이 구별되는 지점이다.「경영」과 「맥」에서는 기존의 전향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 유형인 ‘최무경’이 등장한다. 그녀는 “높은 생활력”과 “능동적인 체관(諦觀)”을 가진 아파트 사무원이다. 사상이 부재한 그녀는 ‘전향소설’에서 불필요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은 장편소설 『사랑의 수족관』의 주인공 기술자 ‘김광호’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기술적 세계에만 관심을 보이며 어떠한 사상이나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최무경과 김광호는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는, 허무주의적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완결된 삶을 사는 인물도 아니다. 그들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주변 인물들에게 휘둘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행의 원인은 최무경과 김광호가 ‘진공상태의 인물’, ‘공백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영」의 ‘오시형’의 ‘다원사관’, 『사랑의 수족관』의 ‘이경희’의 ‘인도주의’ 같은 특정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기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타인에게 투신하다가 배신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말해, 최무경과 김광호는 주체적 결핍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오시형, 이경희와는 달리, 최무경과 김광호는 세계를 미리 주어진 특정한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사무원으로서의, 기술자로서의 공허한 제스처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확실한 자기 정체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 대타자 또한 확실한 정체성이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재의식’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오시형은 ‘다원사관’이라는 미리 주어진 대타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채운다. 그러나 최무경은 그 어떤 대타자로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채우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동의를 요구하는 오시형에게 최무경은 침묵으로 대응한다. 이것은 주체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시형의 ‘다원사관’ 같은 대타자의 결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등불」에서도 나타난다. ‘소설 쓸 수 없음’이라는 부재의식으로 시작하는 「등불」은 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신의 죽음은 곧 대타자의 죽음, 파시즘적 신체제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김남천이 부재의식, 즉 부정성을 그 어떤 실정적 내용으로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었다. ‘전향’했던 그가 해방 직후 창작활동과 ‘정치적’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은 해방 이전 그가 견지했던 ‘부재의식’의 결과이다. 부재의식은 관조적으로 실천을 유보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러한 태도는 허무주의적 관점에 가깝다. 허무주의는 부정성을 응시하지 않기 위해서 실천을 유예한다. 그러나 부재의식은 부정성을 기꺼이 응시하며 실천을 감행한다. 즉 그 어떠한 보증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과 대타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선언하는, ‘다급한 동일시’를 과감히 실행한다. 즉 김남천은 ‘박문경’과 ‘김동호’라는 불확실성, 부정성을 응시하면서 동시에 ‘김지원’과 ‘김동원’이라는 실천을 감행했다. 김남천 문학은 단지 소극적으로 방황하는 문학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재의식’을 선언하며 실천하는 문학이었다. 그의 부재의식은 카프 시절 비판의 대상(「물!」)이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숙청의 빌미(「꿀」)가 되었다. 작품 활동의 처음과 끝에 있었던 그의 부재의식은 그가 가진 독특한 문학적 감각이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00284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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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LANGUAGE & LITERATURE(국어국문학과) > Theses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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