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0

대한민국 헌법의 임시정부 계승성

Title
대한민국 헌법의 임시정부 계승성
Author
박찬승
Keywords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건국강령; 삼균주의; 제헌국회; 임시헌장;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Republic of Korea; provisional Assembly; National doctrine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 1941; Principle of Three Equalities; Constitutional Assembly; Constitu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Issue Date
2012-12
Publisher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INSTITUTE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Citation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2012-12 43:373-430
Abstract
이 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계승되었는가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임시정부의 헌법은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5차에 걸쳐 개정되었다. 특히 권력구조와 관련하여 대통령제 ? 국무령제 ? 국무위원제 ? 주석제 등의 변화를 거쳤는데, 국무령제부터는 대체로 내각책임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 대통령제의 경우에도 국무총리와 각 부 총장들을 모두 임시의정원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어, 사실상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가 섞여 있는 혼합형 제도였다. 따라서 임시정부보다는 임시의정원이 우위에 있는 체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초기의 대통령제에는 단일지도제체를 취하였지만, 국무령제와 주석제 시기에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취하였고, 국무위원제 시기에는 순수한 집단지도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권력구조에 관한 조항들은 큰 변화를 보였지만,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조항은 당시 어느 나라 헌법에도 보이지 않던 것으로,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한편 해방 이후 제헌헌법에도 영향을 미친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는 조소앙의 삼균주의 이념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에서의 기회균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당시 중국측의 중간파세력의 정치이념과 비슷한 것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경제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만든 제헌헌법의 체계는 1944년 임시정부가 만든 임시헌장의 체계와 거의 같다. 이는 제헌헌법을 만든 이들이 임시헌장을 크게 참고했음을 말해준다. 체계만이 아니라 기본이념과 내용의 측면에서도 양자의 헌법은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헌법 전문에서 3·1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임시정부의 여러 헌법 전문과 같다. 또 헌법 기초위원장 서상일은 이 헌법의 바탕에 깔린 기본 정신은 만민균등주의라고 하면서, 이는 임시정부 건국강령의 바탕에 깔린 삼균주의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1944 임시헌장’의 제1조와 제4조를 계승한 것이었다. 또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부분도 대체로 ‘1944 임시헌장’에 실린 국민의 기본권의 내용을 계승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물론 차이도 없지 않았다. 특히 권력구조의 측면에서 임시정부의 헌법이 초기의 대통령제 이후에는 내각책임제의 체제를 계속 취하였던 데 비해, 제헌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또 임시정부의 헌법은 초기부터 일관하여 임시의정원이 임시정부에 비해 우위에 있으면서 정부측을 견제하였는데,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된 가운데 국회의 위상은 임시의정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제헌헌법의 대통령제에도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있었고, 국무원 제도나 국무위원의 부서(副署)와 같은 제도는 임시정부의 그것을 계승한 것이었다. 또 경제적 측면에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토지 국유화, 대생산기관의 국유화와 국영화 등을 내걸었는데, 제헌헌법에서는 토지의 사유를 인정하고, 공공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하는 등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제헌헌법에서는 개인의 경제활동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하였고, 재산권 행사도 공공선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도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상에서 정리한 것처럼, 제헌헌법은 임시정부의 헌법을 체제, 정신(이념), 내용의 측면에서 상당 부분 계승하고 또 이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제헌국회는 인적 측면에서는 임시의정원을 승계하지 못했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임시정부를 계승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으며, 그러한 노력의 흔적은 국가운영의 기본 원리인 ‘헌법’에 잘 나타나고 있다.
URI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2062963http://hdl.handle.net/20.500.11754/54299
ISSN
1225-7028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S](인문과학대학) > HISTORY(사학과) > Articles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