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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시와 하제시

Title
급제시와 하제시
Author
박동욱
Issue Date
2011-06
Publisher
태학사
Citation
문헌과 해석,Vol.55 No.- [2011],28-49(22쪽)
Abstract
어쨌든 시험이란 것은 붙고 봐야 하고, 떨어지는 순간 어떠한 변명이든 궁색해지기 마련이다. 합격한 자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실패한 자는 재기를 도모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격의 소식에 느꼈던 짜릿한 흥분과, 낙방의 고배를 들었던 쓰라린 기억을동시에 갖고 있다. 그 옛날 과거(科擧)는 그러한 성공과 실패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과거 합격은 등제(登第), 급제(及第), 절계(折桂)1 등으로 표현했으며, 이와 관련된 말로는 주의점두(朱衣點頭),2 안탑제명(雁塔題名),3 호비성(呼婢聲)4 등이 있다. 조선 시대 과거(科擧) 급제자 발표는 방방(放榜) 또는 예방(?榜)이라 하였고,5 등과방목(登科名榜)은 천불명경(千佛名經)이라고도한다.6 문무과(文武科)는 붉은 종이에, 생원(生員)·진사(進士)는 흰 종이에 이름을 각각 써 주었는데, 붉은 종이를 홍패(紅牌), 흰 종이를 백패(白牌)라 하였다.||||과거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것을 낙방(落榜)?낙과(落科)?낙제(落第)?하제(下第)?부제(不第) 등으로 표현했고, 이와 관련된 말로는 점액(點額)7?손산외(孫山外)8?음묵(飮墨)9?청패(淸?)10 등이 있다.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낙방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적잖다. 이황은 소과에 세 번이나 낙방을 했고, 이항복은 진사시에 떨어져 성균관에 입학하지 못했으며, 정약용도 대과에 네 번이나 낙방을 했다.||||소과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34.56세, 대과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37~38세였으니 마흔 줄에 합격한 사람도 적지 않았고, 85세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급제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에대해서는 오히려 가문이나 개인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로 보았다고 하니성공을 무조건적으로 높이 평가했던 것도 아닌 듯하다.||||그 옛날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의 감회와 초라한 실패의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URI
http://scholar.dkyobobook.co.kr/searchDetail.laf?barcode=4010025231499http://hdl.handle.net/20.500.11754/36554
ISSN
1739-2810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S](인문과학대학) >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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