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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dvisor한동수-
dc.contributor.author최금미-
dc.date.accessioned2017-11-29T02:28:41Z-
dc.date.available2017-11-29T02:28:41Z-
dc.date.issued2017-08-
dc.identifier.urihttp://hdl.handle.net/20.500.11754/33134-
dc.identifier.uri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1535en_US
dc.description.abstract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특히, 1910년대와 1920년대를 중심으로 하여 지방에서 개최된 물산공진회의 건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물산공진회란 통상 박람회의 형식이 축소, 특화된 형태로 주로 경성 이외의 지방에서 개최되었으며, 물품의 전시와 함께 심사 및 상패수여 나아가 판매까지 행해진 행사였다. 표면적으로는 전시 품목들의 조사와 개량, 발전과 유통에 목적을 두고 개최되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일제의 국내 물자 수탈을 위한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식민지 수탈의 탐욕이 감추어져 있었다. 박람회는 근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새롭게 구축된 공간으로서 당시의 대중에게 제국의 강력한 권력과 자본주의의 소비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곳이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제의 치밀한 계획 하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회장 내에 구축된 건축물은 공진회를 홍보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이는 공진회 건축이 선전의 도구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일제의 계획 하에 구축된 물산공진회의 회장 구성 방식과 회장의 시설인 전시장 및 부대시설 건축물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당시 일제의 제국주의적 도구로서 사용된 지방 물산공진회의 건축에 관한 보편적 특성 및 특징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지방에서 개최된 물산공진회는 주로 물자수송이 유리한 항구도시와 일본과 지리적으로 근접했던 경상도 지역에서 일제 통치의 초기이자 경제 침탈이 확대되는 1910~1920년대에 집중적으로 개최된다. 이러한 특징을 토대로 주요 물산공진회를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으며, 이들을 1910년대 전기와 1910년대 후기, 1920년대로 시기를 구분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공진회 장소는 한정된 기간 동안에만 사용되는 공진회 시설물 특성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기존에 구축된 시설물을 활용한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공진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축되는 시설물의 수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을 포함한 대규모의 장소로 변화한다. 이렇게 선정된 장소인 학교, 수산시험장, 상품진열소 등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한 결과물의 상징이었으며, 이는 회장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실용적인 측면 외에 정치적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에서 1920년대로 오면서 공진회장 내의 시설물과 건설 주체가 다양해지고, 이에 따라 공진회장의 구성은 체계화 및 대규모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변화는 1915년 경성의 조선물산공진회를 기점으로 1910년대 후기부터 급격히 진행된다. 1910년대 전기에는 오직 물품의 전시를 위한 공간 마련에만 집중하였다면, 이후에는 건설되는 시설물에 집중되어 ‘건축의 전시’라는 측면이 부각된다. 이는 회장 내 시설물들을 대규모화 및 다양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회장의 구성이 정비되어 체계화된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서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는 공진회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이후 개최된 공진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통해 경성의 박람회와 지방의 공진회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진회장이 ‘물품의 전시’ 공간에서 ‘건축의 전시’ 공간으로 변이되면서 시기별 공진회 건축에 사용된 건축 양식 또한 변화된다. 1910년대 초기에는 전시 공간 마련에만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식 목구조로 된 단순한 재래 건물이 설치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후에는 ‘전시용 건축’을 위해 당시 유행하는 양식을 사용하여 화려한 건축물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부터의 ‘제체시온(Secession)’양식으로서 이후 20년대에는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이 가미되어 함께 사용된다. 두 양식은 대량생산체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건물의 성격인 공진회 건축에 알맞았고, 당시 유행하던 시대양식으로서 최신의 건축 스타일을 원하는 공진회 건축에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러한 양식들이 공진회 건축 특성상 구조적인 측면보다 건축물 전면 파사드의 장식으로서 사용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공진회 건축은 당시 일제의 정치 경향에도 영향을 받았다. 1910년대 후기에서 최신 건축 양식의 주 전시관과 조선식 전통양식의 부대시설 사이에서 보이는 양분화 된 건축양식이 1920년대에 들어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1910년에서 1920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정치적 노선 변경이 공진회 건축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에서는 1910~1920년대에 개최된 지방 물산공진회에 대한 회장의 구성과 특징, 건축물에 사용된 건축 양식 및 특성에 대하여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고찰하였다.-
dc.publisher한양대학교-
dc.title일제강점기 지방 물산공진회 건축에 관한 연구-
dc.title.alternativeA Study on Architecture of Products Exhibition held in the provinces in Colonial Korea during 1910's to 1920's-
dc.typeTheses-
dc.contributor.googleauthor최금미-
dc.sector.campusS-
dc.sector.daehak대학원-
dc.sector.department건축학과-
dc.description.degree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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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ARCHITECTURE(건축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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