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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과 주변 환경의 시대적 변화에 관한 연구

Title
숭례문과 주변 환경의 시대적 변화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hanges of Sungnyemun and its Environment
Author
최자형
Advisor(s)
한동수
Issue Date
2017-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범위를 결정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숭례문)은 태조 7년인 1398년에 건립되었다. 조선의 모든 사람들은 한양으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성문을 통과해야 했고, 이 중 정문인 숭례문은 한양을 출입하는 주요 관문으로 국왕이 사신을 마중하고 배웅할 때 이용하는 등 그 상징성이 매우 컸다. 조선시대 내내 숭례문 주변은 상업 활동이 활발하여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동미의 출납을 담당하는 관청인 선혜청이 지금의 남대문 수입상가 자리에 있어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었고, 대한 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교통수단이 변화에도 남대문시장과 경성역(현재 서울역)이 생기면서 계속적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 시기를 지나면서 상업시설의 본점이 숭례문 주변에 집중하여 위치하게 된 것도 숭례문이 위치한 지리적 중요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숭례문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숭례문 주변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그리고 변화를 야기한 시대적 상황 및 원인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숭례문에 관련된 각종 문헌 기록, 관련 단행본으로 기본적인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였다. 이후 한양도성, 숭례문 관련 선행 연구 자료를 조사하고 숭례문 주변 공간 변화를 야기한 교통시설, 도시계획 관련 자료를 추가적으로 확인하였다. 각종 문헌들로 파악한 숭례문 주변 공간의 변화는 신문기사와 국가 기록물을 통해 정확한 시기와 사실관계를 재확인하였으며, 당시 지적도와 지도를 통해 실제 주변 경관의 변화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숭례문 주변 공간은 숭례문 좌·우 성벽이 헐리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전차의 도입으로 교통 문제가 야기되면서 한양도성 최초로 성벽이 헐리고, 주변이 원형 석축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경관교번소, 전화 시설 등 일제의 조선통치를 알 수 있는 시설들이 주변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1912년 일제에 의한 경성시구개수사업이 발표되고 1936년 조선시가지 계획령이 시행되면서 경성의 도로가 정비되고 숭례문 주변 도로도 확장되고 신설되었다. 숭례문 주변 도로 폭이 넓어지면서 숭례문 주변은 로터리가 되었다. 전차가 확대되고 자동차 수가 늘어나면서 숭례문 홍예 하부로 출입은 불가능해졌다 1920년에 남산에 신궁이 조성되면서 숭례문에서 남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벽의 훼철 범위는 더 넓어졌고, 심지어 신궁으로 가는 입구임을 알리는 조선신궁참도표석등대가 숭례문 옆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당시 숭례문 주변에는 관공서 및 공공건축물이 주로 건립된다. 조선의 상공업 장려를 권장한다는 목적으로 경성상공장려관이 개관되고, 남대문소학교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선혜청 부근에는 남대문시장과 경성소방서가 그 예이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이 폐허가 되고 숭례문과 주변도 많이 훼손되어 1960년대 초반 숭례문의 대규모 보수가 이루어졌다. 급증하는 인구와 늘어나는 차량으로 도로 교통에 장애가 되어 전차의 운행은 중단되고 전차선로도 철거가 되었다. 숭례문 주변 태평로와 남대문로가 추가 확장되고 흥국생명빌딩, 롯데손해보험, 상공회의소, 신한은행 등 상업시설의 본점 등이 차례로 숭례문 주변에 들어서면서 숭례문은 대형 빌딩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건립 이래로 교통의 중심지였던 숭례문은 도보, 우마차, 전차, 버스,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증가와 함께 도로가 확장되고 도로 가운데 고립되면서 사람들이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도로와 빌딩으로 둘러싸인 숭례문 주변 공간 관리에 대한 문제가 관계 전문가에 의해 제기되고,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숭례문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관람이 가능하도록 숭례문과 인도를 연결하고 주변 광장을 조성하는 ‘숭례문 시민광장’이 2004년에 조성되었다. 2008년 방화로 숭례문은 문루 상당 부분이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화재 피해 복구 과정에서 한양도성의 정문으로서 숭례문의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숭례문 좌우 성곽을 일부 복원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숭례문 주변 환경은 일제강점기 성곽 훼철이 이후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전차 도입 및 운행 중단, 자동차 증가 등 교통수단의 변화와 도로 정비 사업을 비롯한 도시계획 정비, 문화재 인식 변화를 비롯한 문화재 정책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각 요인이 숭례문 주변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통해 숭례문의 장소성과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문화재 주변 환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 문화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여기서 더 나아가 문화재를 포함한 주변 환경 정비 및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문화재 본연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URI
http://hdl.handle.net/20.500.11754/32934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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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OF ENGINEERING[S](공학대학원) > ARCHITECTURAL ENGINEERING(건축공학과) > Theses(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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