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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멘트 생산과 건축자재 개발

Title
일제강점기 시멘트 생산과 건축자재 개발
Other Titles
Cement Production and Development of Building Material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uthor
홍경화
Alternative Author(s)
Hong Kyung Hwa
Advisor(s)
한동수
Issue Date
2024. 2
Publisher
한양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시멘트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건축적으로 주요한 변화의 기점 및 그 배경을 도출하는 사적(史的) 연구에 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시멘트 산업과 관련한 일본 국내의 상황과 일제 치하 조선에 적용된 정책을 고찰하는 한편, 구체적인 건축자재의 유형과 특징을 살펴보고 시멘트가 건축·토목사업의 주요 자재로 사용되는 양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소재와 기술 면에서 진일보한 근대적 건축자재는 근대와 전근대 건축을 구분하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다. 산업혁명으로 추동된 공업화, 산업화 과정을 거쳐 일정한 규격으로 양산된 자재들은 열강의 식민지 확보 경쟁에 따라 지역적으로 일원화되기 시작한 전 세계 시장에 팔려나갔다. 건축자재가 열강의 점유지역을 중심으로 범용성을 획득함에 따라 건축문화의 지역 특성은 이전보다 미약해지고 보편화되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대량생산과 신소재의 등장이 건축문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자재로 철, 유리 그리고 시멘트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시멘트와 그 파생 자재들은 근대 이후 공장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가장 대표적인 건축자재이다. 거푸집 형태와 시공 방법에 따라 자유로운 형태 연출이 가능하고, 일정한 품질로 양산과 유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댐 건설과 철도부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에서 필수적으로 대량 수요가 발생할 뿐 아니라 구조, 마감, 방수 등 건축공정의 거의 모든 부문에 걸친 범용성을 지녔기 때문에 근대적 건축자재로서 대표성을 띤다.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건축용 철강과 판유리, 시멘트는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입되었다. 철의 경우는 미쓰비시제철(三菱製鐵)이 1917년 황해도에 건설한 겸이포제철소를 통해 1918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는데, 당시 생산된 철은 대부분 선철(銑鐵)로, 군수용 납품이 주목적이었다. 시멘트는 일본의 오노다(小野田)시멘트 주식회사가 1917년, 평양 인근인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리에 공장을 건설하고 1919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1936년부터 우베(宇部)시멘트, 아사노(淺野)시멘트 등 일본의 시멘트 자본이 추가로 진출하면서 조선 북부지역의 석회석 매장지대를 따라 공장을 건설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시멘트는 점차 생산량과 수출을 늘려가면서 조선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만주의 수요에 대응했다. 유리의 경우 의료와 식기용 병의 제조소는 확인할 수 있지만, 건축용 판유리의 본격적인 공장생산이 이루어진 것은 해방 이후로 생각된다. 일본의 대표적 시멘트 제조사인 ‘오노다시멘트 제조주식회사(小野田セメント製造株式会社)’는 일본, 대만, 조선, 만주의 시멘트 수요 증가 예측에 기반하여 1913년부터 준비 단계를 거쳐 1919년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리에 평양지사 공장을 설립하고 시멘트 생산을 시작한다. 시멘트 생산 초기의 수요는 철도, 도로, 교량 등 대형 토목공사에 집중되었다. 시멘트는 잔골재와 물, 기타 혼화재료를 섞은 콘크리트로 가공하여 교량의 기초와 교각, 댐과 항만의 거대한 제방을 이루었고 콘크리트관과 블록은 배수시설과 축대의 주요 자재로 사용되었다. 시멘트는 토목공사에서 널리 쓰이며 자연 지형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어 도시기반시설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벽돌 조적조가 다수를 이루던 건축의 구조에도 1920년대부터 점차 콘크리트 도입이 늘어났다. 1923년 일본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건축자재의 내화·불연 성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건축자재와 시공수법의 개발이 진행되어 시멘트, 콘크리트의 실효성이 높아졌으며 이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멘트는 인조석과 슬레이트, 시멘트기와 등 건축의 다양한 마감재로 가공되었으며 전통적 건축자재인 석재와 흙을 대체하면서 건축의 경량화를 이끌었고 불연·내화재료로써 각광받았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 북부 압록강 일대의 수력개발 사업으로 인해 댐과 발전소 건설로 대량의 시멘트 수요가 발생하는 가운데 오노다시멘트의 평양지사 증설과 공장 추가 건설, 일본의 우베시멘트(宇部セメント㈱)와 아사노시멘트(浅野セメント㈱)의 진출로 조선의 시멘트 생산은 계속 증가했다. 수요가 집중되는 도시 인근에는 시멘트기와, 관(管), 슬레이트 등 시멘트 관련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다.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조선도 전시체제에 돌입한다. 모든 자원의 사용이 법으로 제한되면서 군수를 제외한 전 산업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철 및 비철금속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으로, 기존에 철근 및 철강을 사용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건물은 공사가 연기되거나 설계 변경을 통해 그 자재를 교체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관 주도로 소위 ‘대용품 공업’을 진흥시키게 되는데 건축자재도 본래에 사용했던 금속 성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시멘트 등을 혼합하여 화학적 처리를 통해 대체품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일련의 건축자재 대용품은 구조용 재료로써 철을 대체하기에는 강도가 약했기 때문에 주로 소형 철물과 설비, 상하수도관, 마감재 종류 개발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범용성, 성형 용이성, 색채연출, 내수‧내화‧내산 성능 면에서는 기존 자재에 비교하여 우수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종료 이후에도 신흥산업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한편 자원 수급 통제를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하면서, 자원을 분배하기 위한 배급제를 시행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의 대처를 위한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종전 후의 건축 자재 유통구조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1920년대 이후 한국 근대건축사 전개에 있어 시멘트라는 근대건축 주요 자재가 보편화되는 양상과 건축 및 토목에 있어서 구별되는 건축자재로서의 지향,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건축의 경제적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단행된 변혁의 특징을 제시할 수 있다. 키워드 : 일제강점기, 건축자재, 시멘트, 콘크리트, 총동원체제, 금속제한, 대용품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728486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89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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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ARCHITECTURE(건축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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