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요지
12가사는 1세대 하규일과 임기준, 2세대 이주환과 이병성을 거쳐, 3세대 이양교와
정경태를 주축으로 전승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전승과정에서 이양교와 정경태의 음악
적 선택이 12가사에 어떤 형태로 반영되어 전해지는지 살펴보는 것에 목적을 두고,
<상사별곡>, <춘면곡>, <황계사>, <백구사>, <죽지사>, <수양산가>, <권주가>, <처
사가>, <매화가>의 음악적 특징을 비교·분석하였다. 이를 토대로 진행된 논의를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두 창자의 전승이력을 비교한 결과, 모두 시조로 음악에 입문한 후 동시에 가
사 예능보유자가 되었지만, 12가사의 사사과정은 명백히 다르게 나타났다. 이양교는
(1대)하규일·임기준-(2대)이주환·장사훈-(3대)이양교로 이어지는 간결하고 정통한 사사
계보를 가졌다. 한편 정경태는 이병성 이외에도 오윤명, 임재희, 최섬월 등에게서 가사
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반을 홀로 학습하여 독자적인 12가사를 완성하였다.
둘째, 두 창자의 노랫말과 빠르기, 장단구조, 가사붙임새를 분석하여 비교하였다. 그
결과 이양교는 정가적인 창법과 선율에, 정경태는 노랫말의 의미와 형식에 집중한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르기는 이양교에 비해 정경태의 가창이 전반적으로 느린 편이
며, 특히 <춘면곡>과 같이 느린 악곡의 경우, 더 느리게 부르는 경향이 보였다. 이는
정경태의 복잡한 시김새 사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장단 구조와 가사붙
임새를 살펴보면, 이양교는 이주환에게서 사사받은 장단 구조를 고수하고, 가곡에서 유
래한 모음 분화를 반복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또 ‘ㅓ’를 ‘ㅡ’로 발음하는 지역 발음이
특징적이다. 반면 정경태는 노랫말 속에 전하는 잘못된 고유명사나 상용구를 수정하고,
음절 또는 장단의 대구(對句)를 맞추기 위해 노랫말과 가사붙임새, 장단 수를 늘이거나
줄여 악곡의 구성을 바꾸었다. 또 정경태는 이중모음을 풀어서 연행하는 가곡적 표현
보다 모음을 당겨 붙이는 형태를 월등히 많이 사용하여, 노랫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
에 방점을 둔 것으로 판단되었다.
셋째, 출현음·음역·음조직을 살펴보았다. 두 창자의 주요 출현음은 유사하지만, 최고
음을 진성으로 구현하는 이양교가 가성으로 동일 음을 내는 정경태에 비해 고음역에
강한 것을 확인하였다. 음조직은 두 창자 모두 동일하였다. <상사별곡>·<춘면곡>·<황
계사>·<백구사>·<죽지사>·<권주가> 6종의 가사는 진경토리, <수양산가>는 수심가토
리, <처사가>는 경토리+수심가토리, <매화가>는 반경토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
나 익숙한 시김새를 사용할 때는 음계 외 음을 활용하여 두 개 이상의 선법이 교차하
는 현상이 나타났다.
넷째, 시김새와 상이선율을 비교해 보았다. 시김새는 이양교의 경우 추성·퇴성·전성
과 끊는표의 사용이 많았고, 정경태는 전·후 시김새와 겹흘림, 요성의 사용이 많았다.
숨표·쉼표와 늘임표·줄임표 역시 정경태에게 보다 많이 나타났다. 이양교는 추성과 퇴
성의 사용으로 선율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특징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시김새
의 사용횟수가 적고 복합적인 시김새의 사용이 적은 관계로 담백하며 절제된 선율을
구사하였다. 정경태는 시김새를 원형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복합적으로 조합하여 사
용하였는데, 이 복합 시김새와 덧길이·반길이의 조합이 잡가스러운 감상을 전한다. 더
하여 끊는표를 전·후 시김새나 요성에 조합하여, 극적이고 화려한 선율로 구현되었다.
마지막으로 상이선율의 출현현황을 비교하면, 이주환을 기준으로 이양교에 비하여
정경태가 월등히 독자적인 선율을 많이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백구사>에서
이양교는 상이선율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나머지 악곡 역시 상이선율의 출현이
적었다. 정경태는 <죽지사>를 제외한 모든 악곡에서 상이선율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이양교는 이주환의 선율을 온전히 전승한 형태로 연행하고 있고, 정경태
는 2세대의 선율을 그대로 연주하기보다 독자적인 변화를 모색하며, 본인의 음악 스
타일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동시대 12가사 예능보유자인 이양교와 정경태의 9종의 가사를 대상으로 음악
적 전승양상을 살펴보았다. 하규일과 임기준이라는 전승의 주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
고 두 창자의 가사는 매우 대별되는 음악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양교는 담백하고
단순한 가운데 정가의 매력을 잘 전달하기 위한 간결하고 정통한 창법을 구사하고 있
다. 반면 정경태는 선율을 장식하고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음악적 표현을 풍부하게 함으로써, 민속악적인 감상을 준다. 또한 노랫말의 구성이나
가사붙임에 있어 대구(對句)를 맞추는 시조의 특성을 반영하거나, 잘못 전승된 노랫말
을 수정하는 등 문학적인 ‘가사’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본 연구는 노랫말 비교에 그쳤던 기존의 연구를 확장하여, 실질적 선율의 비교·분석
을 통해 이양교와 정경태의 12가사가 전승자의 음악적 선택을 거치며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었는지 고찰한 것에 의의가 있다. 그 결과, 두 창자는 12가사에 자신의 음악적
철학과 성향을 반영하여 미시적인 음악적 차이를 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