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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 1차성 내 기단 건물지 연구

Title
화성 당성 1차성 내 기단 건물지 연구
Author
신다연
Advisor(s)
안신원
Issue Date
2023. 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본 연구는 화성 당성 1차성 내에서 확인된 건물지 중 기단 건물지에 대한 발굴조사 자료를 종합·검토하여 그 구조와 사용시기 및 성격을 추론하고 그 변화양상 및 요인을 파악한 연구이다. 화성 당성 1차성 내 기단 건물지는 1차성의 서측 평탄지에 위치하며, 7세기 중반에 조성되어 10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기단 건물지의 구조는 약 3단계로 변화되었는데 그 중심 구조는 약 5☓2칸의 장방형 건물지이며, 이후 점차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단 건물지에서 확인되는 기와의 수량이 9세기에 급격하게 증가하였다가 10세기 이후에는 감소하고 더 이상의 유물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즉, 기단 건물지의 최종 조성은 통일신라 말에 이루어졌으며, 고려 초 이후 폐기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기단 건물지 폐기의 요인은 건물지 내외부에서 화재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능의 축소 혹은 자연스러운 소멸로 판단된다. 이러한 기단 건물지의 성격과 사용시기는 치소성이자 대외 교역의 거점이었던 당성 및 그 일대의 운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기단 건물지에서 출토된 7세기 후반 - 9세기 초반의‘백사(白寺)’명 기와 및 청동제용기가 출토되어 당성 인근의 백곡리사지와의 연관성이 고려되었다. 이후 9세기 전반에 걸쳐 기단 건물지에서 ‘웅천주(熊川州)’·‘본피모(本彼謨)’·‘양모(梁謀)’·‘관택(舘宅)’·‘신동(新棟)’명 등의 명문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명문와의 등장은 8 ~ 9세기 통일신라 중앙조정의 지배력 약화와 지방호족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신라 중앙조정은 당성진(唐城鎭)을 설치(829년)하고 사찬 극정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신라 하대 진(鎭)은 주로 해양거점에 설치되어 중앙조정의 지방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통제력 향상을 도모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진(鎭)에 중앙관료의 파견이 이루어졌고 그 출신지인 왕경 6부 중 하나인‘본피모(本彼謨)’·‘양모(梁謀)’명 기와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시기에 관청을 뜻하는‘관택(舘宅)’명 기와가 등장하여 기단 건물지가 당성 및 그 일대의 운영과 관리를 위한 관청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화성 당성 1차성의 기단 건물지는 당성의 행정치소로서의 역할과 관련된 건물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며, 화성 당성의 주요 기능에 따른 성 내 공간구조를 대변하는 의의를 가진 유구라고 할 수 있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53756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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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CULTURAL ANTHROPOLOGY(문화인류학과) > Theses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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