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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 역사적 변천 연구

Title
해금의 역사적 변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Historical Changes of Haegeum : Focused on the Origin, Form and Fingering
Author
이강산
Alternative Author(s)
Lee Kang San
Advisor(s)
김성아
Issue Date
2022. 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해금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 기원에서부터 한반도 유입 이후 형태 및 운지법의 변화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해금의 기원설에 대하여 중국의 여러 문헌을 비교 고찰하였고, 한반도 유입에 대해서 한국 측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해금의 한반도 유입 이후 해금의 형태와 운지법의 변화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각종 음악문헌 및 도상자료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금의 기원과 관련하여 해금은 중국의 고대 소수민족인 해족에 의해 전승된 악기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금의 기원악기로 알려진 ‘현도(弦鼗)’는 본래 악기의 이름이 아니었지만, 6세기 이후 문인들에 의해 비파의 기원으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11세기에는 해금의 기원악기로도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현도(弦鼗)’는 해금의 기원과는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해금의 명칭에 있어서 ‘혜금(嵇琴)’, ‘계금(稽琴)’은 3세기 인물 혜강과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혜강의 시대에는 해금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원나라부터는 이 명칭들이 쓰이지 않았다. 한반도 기록에서 해금은 ‘혜금(嵇琴)’이라는 명칭이 주로 등장함으로 보아 송나라를 통해 유입되었을 것이며, 시기적으로는 13세기 이전으로 보았다. 근거로는 11세기 송나라의 교방악사를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과 12세기 ‘쌍현(雙絃)’이라는 이름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한반도 유입 이후 해금의 명칭은 ‘해금(奚琴)’과 ‘혜금(嵇琴)’이 혼용되었는데, 이는 해금의 기원에 대한 당시 문인들의 견해 차이로 인한 결과로 보았다. 하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전례서와 악서에는 ‘해금(奚琴)’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궁중에서의 공식적인 악기 명칭은 ‘해금(奚琴)’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한반도 유입 이전 해금의 형태는 ‘산성(散聲)’이 존재하지 않고 긴 대나무 활로 연주하는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유입 이후 최초로 발견되는 해금의 모습은 현재와 달리 마디가 많은 대나무를 ‘입죽(立竹)’으로 사용하였고, ‘입죽’이 줄의 반대 방향으로 꽂혀있었다. 또한 ‘산성’이 ‘주아(周兒)’의 아래 위치하며, ‘주아’에서 내려온 줄이 ‘감잡이(甘自非)’가 아닌 ‘주철(柱鐵)’에 연결되어있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해금은 19세기 전반, 19세기 후반의 형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세기 전반에는 이전과 달리 대나무의 마디가 없이 매끈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줄의 아래 끝부분에 ‘부들(染尾)’이 연결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19세기 후반의 해금은 현재와 유사한 형태로 변화하였으며, 이는 역안법으로의 운지법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18세기 이전 민간에서는 궁중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안법을 사용하는 해금이 연주되었고, 주로 현악기와 함께 편성되었다. 그러나 18세기의 해금은 관악기와 함께 편성되었으며, 궁중에서의 변화보다 한 세기나 이른 1725년(‘풍산김씨세전서화첩’)을 기점으로 역안법을 사용하는 해금의 형태가 먼저 등장하였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궁중에서도 이 해금이 유입되어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악학궤범』의 해금 산형을 분석한 결과 당시 조선시대 궁중에서의 해금은 경안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조율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두 줄 사이의 음 간격은 5도였으나, 연주되는 악곡의 궁(key)에 따라 중현과 유현의 개방현을 조율하여 연주에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분석한 『악학궤범』의 산형을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의 악곡에 적용하여본 결과 중현의 개방현을 연주에 사용하였고, 선율의 진행으로 보아 중현에서의 운지 이동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취풍형을 제외하고는 유현에서의 운지 이동의 활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외적으로 취풍형에서는 유현에서의 운지이동이 활용되었는데, 선율의 진행에 있어 宮을 식지로하는 포지션과 上三을 식지로하는 포지션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현행 보태평과 정대업의 산형은 세조조에 비해 개방현의 음정을 5도가량 낮게 조율하도록 변화하였다. 또한 개방현을 연주에 사용하지 않으며, 운지법의 활용 범위가 좁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운지법의 변화는 19세기 후반 민간에서 쓰이던 역안법을 사용하는 해금이 궁중으로 유입됨에 따른 변화로 추론하였다. 특히 정대업에서의 해금 운지법 변화는 ‘음내림표’와 연관이 있었다. 이 ‘음내림표’는 피리의 연주법에 의한 표기이며, 20세기 초기 『아악부악보』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므로 19세기 후반 궁중으로 유입된 삼현육각편성의 리드악기인 피리의 연주법에 따라 해금의 운지법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위와 같이 해금은 기원에서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던 악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외부에서 유입된 해금이 향악화를 거쳐 한반도의 특성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한 결과라 생각된다. 해금의 기원과 악기 및 음악의 변화 과정을 고찰한 본 연구가 미래 해금의 무한한 발전에 기여되기를 바라본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26633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7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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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TRADITIONAL MUSIC(국악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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