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豫劇 豫西調의 形成과 變遷 연구

Title
豫劇 豫西調의 形成과 變遷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formation and change of Yuxi tune in Henan Opera
Author
이허
Alternative Author(s)
伊河
Advisor(s)
오수경
Issue Date
2022. 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예서조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줄곧 학계 쟁론의 촛점이다. 본 논문에서는 주로 민간 속담과 조식 관계를 통하여 예서조 원류의 문제를 탐색하였다. 필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예서조 전신 고산황과 라희, 권희, 방자강, 이황강, 월조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것을 밝혔다. 본 연구는 고산황 원류를 고찰하면서 아울러 예서조와 예극의 원류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필자는 민족 음악학, 음악인류학의 이론과 방법을 운용하여 예서조, 예극의 원류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논문은 아래 몇 가지 범위를 중심으로 하여 논술을 진행하였다. 제1장은 豫西調 연구의 근황을 긴요하게 논술하였다. 본 논문의 연구 방법과 특점을 간략히 서술하고, 연구를 선택한 가치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본 논문의 필요성과 실행 가능성을 도출하였다. 제2장의 중점은 靠山簧의 가치를 새롭게 살펴보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주로 豫西調의 전신인 靠山簧의 형성을 겨누어서 상세하게 계통 관계를 밝혔다. 필자는 필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예서 산간지역에 남아 있는 靠山簧과 豫西調 관계는 특별히 밀접하다는 것을 밝혔다. 靠山簧의 형성 문제와 관련하여 문헌 기록도 없고 역사적으로도 단절된 상황에서, 우리는 민간에 전해지는 몇 가지 속담을 통해서 靠山簧의 형성에 대한 계통을 구분 지을 수 있었다. 靠山簧은 변화하고 형성하는 과정에서 ‘羅, 卷, 梆, 簧, 越’ 다섯 가지 성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특히 성강, 조식, 판식, 곡패, 관목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오늘날 전해져 내려온 豫西調 唱腔 가운데 靠山簧이 애초 가지고 있는 板式과 관목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제3장에서 주로 탐색한 것은 豫西調의 본원과 豫劇 宮調式의 문제이다. 예서방자는 절주(리듬)와 판식 상에서 방자강이라는 체계의 한 지맥에 속하는데, 태어나고 커가는 과정 중에 그 절주와 판식은 방자강의 영향을 받았다. 豫西梆子는 그들 梆子腔과 마찬가지로 만판, 유수, 산판, 비판을 가지고 있는데 板式과 절주에서 보자면 豫西調와 山東梆子, 河北梆子, 秦腔, 晉劇 등 방자강의 절주와 큰 틀에서 판식이 모두 서로 같으나 다만 선율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선율이란 전해지는 지역의 어언, 어음 및 민간 음악에 따라 변화하고 바뀌게 되므로 방자강이 예서 일대에 전해지자 곧 당지의 민간 음악과 어언, 어음과 결합하여 “豫西梆子”를 형성하게 되었다. 본 장에서는 민간 속담을 통하여 豫西調 형성 문제를 탐구했을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조식 관계를 운용하여 예동조, 豫西調와 靠山簧 양대 강조 관계를 논증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고산황, 예서조, 河南梆子는 오성 중에 궁조식이 위주가 되었으며 간혹 치조식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제4장에서는 1936년이후 豫西調 극단이 河南省 開封에 진주하여 공연을 시작한 것부터 이 豫西調와 豫東調가 피차 서로 흡수하고 참고하는 것까지를 주로 논술하였다. 여자 연예인이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에는 창강이 매우 단일하여 풍부한 강창을 가지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여자 연예인들의 노력으로 여성 창강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1922년이후, 여자 연기자들이 점차로 무대에 서게 되고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면서 예동조와 예서조는 연달아 서로 점차적로 “贗腔(안강)”을 포기함에 따라 양대 조에서 서로 배우고 같은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점차 교류하고 융합되었다. 豫東調의 唱腔은 활발하고 유쾌하며, 豫西調의 唱腔은 완곡하고 낮았는데 양대 강조의 융합은 필연적인 추세였다. 주해수(周海水)는 세 번에 걸쳐 극단을 이끌고 開封에 가서 豫東調와 豫西調가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게 하여 동서 합류를 위한 밑바탕을 놓았다. 豫西調 唱腔의 혁신 주류는 배우이지 결코 극단주인 주해수(周海水)가 아니다. 왕진남(王鎮南)은 부친 장복선(張福仙)과 사서명(史書明),조석명(趙錫銘) 등의 도움으로 豫東調와 豫西調를 천의무봉으로 완벽하게 결합한 무대 공연을 하였다. 제5장에서는 신중국 초기부터 문혁 이후 豫東調와 豫西調가 발전 양상하여 "舊瓶裝新酒"시기까자를 중점적으로 찬술하였다. 이 시기는 두 지역 유파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 신중국 시기에는 애국신편 역사극이라는 게 나왔지만 여전히 ‘낡은 곡조’였다. 그렇지만 문혁이 끝나갈 때까지는 여전히 “舊瓶裝新酒” 것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개인 유파가 두드러졌다. 1976년 문혁이 끝나고 대중들은 문혁 시기의 양판극에 싫증을 내며 그들은 ‘낡은 곡조’를 갈망하게 되고 일순간에 수많은 신작 역사극과 현대극이 쏟아져 나왔다. 예극으로《朝陽溝》, 《小二黑結婚》, 《血濺烏紗》, 《十五貫》《程嬰救孤》, 《清風亭上》, 《淚灑相思地》등이 이때 작품들이다. 제6장은 본 논문은 결론으로서, 豫東調와 豫西調의 변증 관계를 논술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 논문에서 제기하고 있는 과제의 가치를 밝히며, 예서조, 고산황의 발전 방향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하였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591670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6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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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CHINESE LANGUAGE & LITERATURE(중어중문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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