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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미와 ‘모노’ — 모노노아와레와 한(恨)의 미학 서설 —

Title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미와 ‘모노’ — 모노노아와레와 한(恨)의 미학 서설 —
Other Titles
‘Mono’ and Beauty of Sadness in Yanagi Muneyoshi – For a Study on the Aesthetics of Monono-aware and Han(恨) –
Author
박규태
Keywords
야나기 무네요시(Yanagi Muneyoshi),; 비애미(Beauty of Sadness); 모노(Mono); 모노노아와레(Monono-aware); 한(Han)
Issue Date
2020-12
Publisher
한국일본사상사학회
Citation
日本思想, No. 39, Page. 67-93
Abstract
야나기 무네요시가 ‘비애미’라는 것을 거론한 이래 그것은 오랜 동안 조선미의 전형인 것처럼 말해져왔다. 이 비애미는 혹 ‘모노노아와레’나 ‘한’(恨)의 미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소박한 의문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실제로 야나기가 말한 비애미는 슬픔뿐만 아니라 원한의 감정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애미와 모노노아와레 또는 비애미와 한의 유사성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본고의 관심은 아니다. 본고의 지향점은 ‘모노’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일본미와 조선미를 둘러싼 미의 사상성을 묻는 데에 있다. 모노는 일본인의 공통개념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본의 문학, 종교, 사상에 이르기까지 깊이 침투해있는 근본 개념이다. 따라서 ‘모노의 사상’을 묻는 일은 곧 일본 사상전통의 근본을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령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모노노아와레는 ‘모노’의 ‘아와레’를 가리키며, 니시다 기타로가 말하는 ‘행위적 직관의 세계’란 모노의 세계 즉 “우리가 직접 모노를 보고 모노를 생각하는 세계”로서 생기하는 것, 다시 말해 “모노가 되어 모노를 생각하고, 모노가 되어 모노를 보는 것”을 가리킨다. 본고의 주요 고찰대상인 야나기 무네요시 또한 ‘모노의 사상’에서 간과할 수 없는 위상을 차지한다. 야나기의 민예론은 결국 ‘모노의 민예론’이라 할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모노’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이 야나기의 비애미 또는 민예미에 어떤 양상으로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밝히는 데에 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모노노아와레와 비애미의 접점에 주목하는 한편, 결론적으로 그 토대 위에서 향후 모노노아와레와 한의 미학 연구를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고자 한다. From the discourse on Beauty of Sadness by Yanagi Muneyoshi downward, it has often been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of the Korean Beauty for a long time. Is there any relationship between the Beauty of Sadness and the aesthetics of Monono-aware or Han(恨)? Such a simple question is a motive of this essay. Factually, the Beauty of Sadness seems to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emotion of not only sadness but also grudge. However, I am not especially interested in the naive comparison between Beauty of Sadness and Monono-aware or Han. This essay is oriented toward the thought of Beauty in association with the Japanese Beauty and the Korean Beauty, searching after the meaning of Mono. Mono can be said to be a common notion among Japanese people. Moreover, it might be a kind of basic notion deeply soaked into the Japanese literature, even in the Japanese religion and thought as well. Therefore, asking for Mono is also an issue of inquiring “What is the essence of Japanese Thought?”. Yanagi Muneyoshi, who is the main subject of this essay, also holds a key position in the thought of Mono. His Mingei-ron (discourse on fork arts) is eventually “Mingei-ron of Mono”, no less.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investigate how Mono shows up in his Beauty of Sadness, while focusing upon the meaning of the Mono. In so doing, I will give special attention to the various points of contact between Monono-aware and Beauty of Sadness, in order to find some clues to the following study on the aesthetics of Monono-aware and Han. 柳宗悅が「悲哀美」を論じて以來、それは長い間まるで朝鮮美の典型かのように見なされてきている。そうした悲哀美はもしかして「物の哀れ」や「ハン」(恨)の美学と何らかの関連性をもつものではなかろうか? このような素朴な疑問が本考の出発点である。実際に柳宗悅のいう悲哀美は悲しみのみならず怨恨の感情とも無関係ではないように思われる。だが、本考は悲哀美と物の哀れとの、あるいは悲哀美とハンとの類似性を単純に比較するものではない。それよりも本考では「もの」の意味合いに基づき日本美と朝鮮美とをめぐる「美の思想性」を問うことにする。「もの」とは 日本人の共通概念に留まらず、日本の文学·宗敎·思想などにいたるまで深く浸透している根本概念である。したがって、「もの」の思想を求めることは即ち日本の思想的伝統の根本を尋ねる作業でもある。たとえば、本居宣長のいう物の哀れは「もの」の「あわれ」に他ならない。なお西田幾多郞のいう「行爲的直感」の世界とは「もの」の世界、つまり我々が直接「もの」をみ、「もの」を考える世界として生起するもの、言い換えれば「もの」になって「もの」を考えたり、「もの」になって「もの」を見ることを意味する。本考の主な研究対象である柳宗悅もまた「もの」の思想において看過できない人物である。柳宗悅の民芸論は結局「ものの民芸論」と言えよう。本考の目的は、こうした「もの」に焦点を合わせつつ、それが柳宗悅のいう悲哀美や民芸美にどのように反映されあらわれるのかを究明することにある。その過程において、ことに物の哀れと悲哀美との接点に注目する一方、それに基づいて後の物の哀れとハンの美学研究における手掛かりを模索しようとする。
UR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66978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64921
ISSN
1229-9235
DOI
10.30615/kajt.2020.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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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ANGUAGES & CULTURES[E](국제문화대학) > JAPANESE STUDIES(일본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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