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감독 지망생의 정체성 형성 과정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영화감독 지망생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모인 한 영화제작집단에서의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특정한 실천의 성격을 제작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것이 정체성 형성 과정과 맺는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대상인 영화제작집단 ‘서울영상A’는 결코 특수한 성격만을 지닌 집단이 아니다. ‘돈’과 ‘사람’, 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영화 창작의 조건은 영화가 ‘나 홀로’ 할 수 없는 성격의 행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영화감독 지망생은 영화를 창작하는 집단 혹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같은 꿈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학습 행위와 창작 작업을 해나간다. 영화를 업으로 삼는 혹은 삼을 구성원 간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영화제작집단 서울영상A는 단순한 취미 소비가 아닌 실질적인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삼는다. 본 집단은 영화라는 동일한 영역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창작을 실천하는 ‘실천공동체’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본 집단은 영화 제작이라는 명확한 방향성과 이에 대한 정교한 방법론을 갖춘 공동체로, 엄격한 규율과 위계적 팀 시스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영화 제작의 준비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제작비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영화의 관습과 독창성 사이의 미학적 접점 그리고 생계유지와 예술창작의 접점을 찾아간다. 이들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과 역할 수행으로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영화 제작과정 돌입 시에는 특히 그것의 의례적 성격이 부각된다. 사전제작 단계에서는 전방위적인 협업이 이루어지는데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배역’에 충실하여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게끔 전력을 쏟는다. 이후 촬영 단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변수와 시간 제약으로 인해 촬영 현장은 비일상적 시공간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신성성을 지닌 종교적인 공간으로서의 속성을 지닌다. 감독은 이 혼란스러운 현장에 질서를 부여하고 강한 리더십으로 스태프들을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제작과정의 비일상적인 통과의례 경험은 영화감독 지망생의 정체성 형성 과정의 핵심적인 사항이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들이 영화를 만듦으로써 역량을 발휘하고 자기실현을 이루어내는 영화창작자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영화감독 지망생의 정체성 형성은 비일상적인 영화 제작 경험을 일상화시켜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본이 많이 투여되는 영화 매체의 기본 속성상 이것은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더욱이 장편영화 제작의 기회를 갖기가 매우 힘든 한국영화산업의 환경 속에서 이들은 단편영화 제작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는 수련자와 자기경영자의 태도로 기약 없는 과정의 연속을 통과하는 영화감독 지망생의 반복적 실천으로 다시 연결된다. 이들이 영화감독 되기의 조건을 갖추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보장되는 것은 없다. ‘감독’과 ‘비감독’ 사이에서 창작을 지속하며 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