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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연구

Title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Nitobe-Inazo
Author
배춘희
Alternative Author(s)
Bae, Chun Hee
Advisor(s)
정하미
Issue Date
2008-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일본 근대국가의 형성기에 태어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모습을 ‘문명’으로 보고, 모방과 재창조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는 근대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교육가·저널리스트·외교가로서 일본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니토베의 이름은 東京 제일고등학교장으로 대표되는 교육자로서, 영문 저서 『武士道』 저술을 통해 국제사회에 일본을 널리 알린 일본소개자로서, 국제연맹 사무차장으로 대표되는 국제인으로서, 그리고 전문 학술분야에서는 농정학자·식민정책학자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일본 근대국가 형성기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니토베 역시 생애의 대부분을 근대국가 형성을 위해 바쳤다. 그리하여 니토베에게는 평화주의자 또는 국제주의자라는 측면과 함께 제국주의자 또는 식민주의자라는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니토베 연구는 니토베의 평화주의자 또는 국제주의자로 부각시키고 있을 뿐 제국주의적 측면에 대해서는 축소 혹은 왜곡하고 있다. 니토베는 근대일본에서 ‘식민학(또는 식민정책학)의 제 1인자’라는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식민학 및 식민지 조선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니토베의 생애와 사상은 양적인 측면에서 막대한 자료를 망라하고 있는 『新渡戶稻造全集』(별권포함 24권)에 수록된 자료를 살펴보면, 니토베의 식민정책학자로서의 측면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으며, 식민정책학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누락되어 있다. 니토베의 식민학은 대만, 조선, 만주, 남양군도 등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 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조선 식민지 지배에 관해 언급한 저작들이 남아 있다. 그 러나, 그의 조선관 내지 식민지관에 대한 연구가 미미하며 특히 한국측의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하여 니토베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근대일본의 국민국가 형성기에 태어나고 성장한 니토베가 ‘개인 과 국가’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갈등하면서도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근대일본의 국민국가 형성을 위해 바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니토베는 일찍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퀘이커신앙으로 일생을 일관했지만 그것은 니토베 자신의 고뇌와 갈등을 해소 하였을 뿐 식민지 민중의 고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점이 니토베의 자아상의 한계라 할 수 있다. 또한 1906년 조선(당시는 대한제국)을 방문하면서 쓴 「亡國」,「枯死國朝鮮」 등을 통해 조선 멸시관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니토베의 언설과 행동은 日 本이라는 國家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고자 했던 그의 제국주의적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니토베는 일본 내에서 ‘식민학(또는 식민정책학)의 제 1인자’로 불리고 있 는 인물이다. 이 논문에서는 니토베의 식민학 수용과정을 비롯하여 식민정책에 대 한 입장, 식민지체제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니토베는 ‘식민 은 문명의 전파’라는 논리로 세계적 추세인 식민지 제국주의를 비판없이 받아들인 것 으로 보여진다. 서양을 ‘문명’으로 본 나머지 서양문명의 전파 즉 서양 제국주의에 의 한 비서구 세계의 광범위한 식민지화에 대해서 당연시했다. 이것은 니토베가 서양 학 문의 수용에 따른 ‘서양안경’의 시선으로 동양의 여러 민족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정 당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보는 그의 제국주의 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끝으로 니토베의 植民地朝鮮觀에 대해 살펴 보았다. 니토베는 일생에 걸쳐 일관 되게 일본의 조선병합의 정당성과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그리하여 니토베는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다양 한 경로를 통해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 니토베는 일생에 걸쳐 문명화나 발달된 문명, 인류애를 강조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그 중심 초점이 일본민족과 일본의 미래에 맞추어져 있었으 며, 식민지지배로 고통을 받고 있던 피지배 민족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제대로 제 시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니토베의 활약에 대한 평가는 일본의 終戰과 더불어 식민지 상실과 식 민정책학의 해체 속에서 니토베의 식민학이라는 일면은 사라졌고 이런 점 등이 戰 後일본사회가 니토베의 식민학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게 되었다. 니토베의 식민학 에 대한 평가는 현시점에서도 드문 실정이며 다만 본 논문에서는 자료를 통해 그 의 양면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Inazo Nitobe (1862~1933), philosopher, pedagogue, journalist and diplomat representing the near modern Japan, played a fairly important role during the process of imitation and recreation in the history of Japan. Since he was born in the age of Japan's rebirth as a modern country, he was inclined to view Western imperial nations as ‘prototypes of civilization’. People remember his name as headmaster of the First High School, Tokyo, the most prestigious school in Japan, as noted writer who introduced Japan to the world through his English book『Samurai』or Chivalry, as international-minded Under 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as agro-political scholar as well as colonial policy maker with expertness in each field. In spite of his fame as the No. 1 specialist in the area of coloniology (or colonial politics) in the near modern Japan, there are relatively few studies on his views of coloniology and Japanese colony of Chosun.『The New Complete Works of Inazo Nitobe』(24 volumes including separate ones) contain a huge amount of data about his life and thoughts but deal extremely carefully with his views as colonial policy specialist, omitting large portion of materials concerned with colonial politics. Nitobe's coloniology covers a vast geological area ranging from Taiwan, Korea and Manchuria to South Sea Islands. Although he left behind some works about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only an insignificant amount of studies has been conducted on his view of colonialism and Japan's rule. The very fact that there is virtually none conducted by Koreans in this regard has particularly motivated me to pay attention to him. His scornful attitude toward Chosun (then Daehan Empire) was clearly revealed in his writings『A Decaying Nation Suigen, Korea』 and『Primitive Life and Presiding Death in Korea』which were written on the occasion of his visit to Korea in 1906. His thoughts expressed through his deeds and speeches were evidences confirming his imperialistic viewpoint taking the faithful stand for the nationalistic Japan. It is a well known fact that Nitobe was Japan's leading scholar in coloniology (or colonial politics). The present paper examines the process how he came to such a stand of coloniology, his view of colonial policy and his perception on the colonial system. As a result, it becomes evident that he, without due consideration, adopted the colonial imperialism which was rampant throughout the world at that time under the pretense of logic that 'colony is a means to propagate civilization'. Because he looked upon the Western world as 'civilization' itself, he took for granted the propagation of the Western culture into other part of the world or colonization of non-Western countries by the Western imperialism. It may be true to say that Nitobe had kept an imperialistic angle to justify the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 as he saw through 'the Western glasses' the discrimination and contempt of the Western countries toward the Oriental nations in the wake of his acceptance of Western science.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47152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0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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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JAPANESE LANGUAGE AND CULTURE(일본언어·문화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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