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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지방기자단과 지방기자대회

Title
일제하 지방기자단과 지방기자대회
Other Titles
The Local Press Clubs and Assemblies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uthor
장소연
Alternative Author(s)
Jang, Soyeon
Advisor(s)
박찬승
Issue Date
2011-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본 연구는 1920년 민간지가 창간된 이후 전국 각지의 지방기자단 조직과 지방기자대회 개최를 분석하여 일제하 지방언론운동의 전개양상과 그 특징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20년대 초에 조직된 기자단들은 대부분 조선인과 일본인 신문기자가 함께 결성한 총독부 친화적 단체였다. 그러나 이 시기 경성에서 전개된 조선인의 언론운동이 점차 지방으로 전파되고, 각 지방에서 사회운동이 활성화됨과 동시에 1924년에 세 개의 민간지가 전국적으로 지국을 설치하여 지방기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지방기자단 조직이 활성화되었다. 지방기자단의 성격도 변화하게 되어 참가자격을 ‘조선문 신문 및 잡지 기자’로 한정하였고, 언론자유와 대중운동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1931년의 만주사변 이후 총독부의 통제 강화로 인하여 지방기자단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지방기자단의 구성원에 다시 일본인 발행 신문기자가 포함되었다. 기자단의 조직 목적도 기자들의 친목 도모로 한정되어 이전 시기와 성격을 달리하였다. 지방기자단은 경상도, 함경도, 황해도에서 활발하게 조직되었고, 경기도와 강원도는 지방기자단의 조직이 저조하였다. 지방기자단의 조직 수와 지방기자대회의 개최 건수는 대부분 비례관계를 보이는데, 강원도와 전라도만 예외적으로 기자대회가 활발하게 개최된 것과 반대로 기자단의 조직은 낮게 나타났다. 이것은 해당 지역 기자들이 직접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지방의 기자대회는 1925년 전조선기자대회를 계기로 촉발되어 기존에 조직된 기자단을 바탕으로 점차 상설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이 시기에 지방기자들은 지방기자대회를 통해 기자의 권위 향상과 언론자유 수호를 추구하는 동시에 각종 대중운동을 지원하였는데 이로 인해 당국의 단속이 점차 강화되었다. 1928년에 치안유지법과 사상문제에 관련된 법령이 개정되고, 1931년에 만주사변이 발발한 후 일제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어 기자대회 개최는 점차 감소하다가 1935년에 마지막 기자대회가 개최되었다. 지방의 기자대회는 경상도와 전라도, 함경도, 황해도에서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전라도의 기자대회는 다른 지역보다 일찍부터 시작되어 1925년 이후 본격화된 지방기자대회의 선도적인 존재였고, 경상도의 기자대회는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개최 건수를 기록하였다. 함경도와 황해도는 모두 도 단위 기자대회의 비율이 높아, 기자들이 도내에서 비교적 체계적인 연락망을 갖추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평안도와 강원도는 군 단위 기자대회의 비율이 높아 도내 통합된 기자대회의 개최가 요원하였음을 알 수 있고, 경기도와 충청도는 경성과 인접하여 중앙언론운동에 참여하기 수월하던 만큼 도내에서 지방기자단의 조직이나 기자대회의 개최가 적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방기자대회의 결의문에서 가장 중점이 된 것은 언론자유와 지국 운영에 관련된 사항이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기자들은 당국과 본사에 경고문을 보내거나 교섭위원을 파견하여 협상을 시도하였다. 또 ‘대중운동 지원’도 중요한 의제로 대두되어 소작문제, 노동문제, 사상문제 등의 대중운동을 지원하고 이에 대하여 일치된 보조를 취하며 기사화하여 여론을 환기할 것을 결의하였다. 아울러 민중의 생활 상태를 조사, 발표하고 농민과 노동자의 각성을 촉구하여 당시 지역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일제하 지방언론운동은 1925년부터 1930년 기간에 가장 활성화되었다. 1924년에 지방기자단이 전국적으로 조직되고 이를 바탕으로 1925년부터 지방의 기자대회 개최가 활발해지면서 지방언론운동이 고조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일제의 언론 탄압이 더욱 강화되면서 지방언론운동은 쇠퇴하게 되었다. 둘째, 지방언론운동은 경상도, 함경도, 황해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세 지역에서 지방기자단이 다수 조직되었고, 지방기자대회는 도를 단위로 하여 꾸준히 개최되었다. 전라도와 강원도의 경우 기자대회 개최는 활성화되었지만 기자단의 조직은 저조하였는데, 이는 전라도와 강원도의 언론운동을 주도한 기자들이 지역 사회운동가였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사회운동의 성쇠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셋째, 지방언론운동은 ① 언론자유의 수호, ② 지방언론의 권위 신장, ③ 대중운동의 지원, ④ 민족의 의사 대변의 목적 하에 전개되었다. 지방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지방과 조선민족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지방언론운동을 전개하였고, 따라서 지방언론운동은 언론운동인 동시에 지역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39989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16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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