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8세기 문인이자 서예가인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의 서예론과 문방사우론에 관한 연구이다. 직하체(稷下體) 서예로 일가를 이루었던 김상숙은 서예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문장으로도 유명하였다. 김상숙은 주역․논어․도덕경․시경․서경․논어․장자․사기 등을 즐겨 읽었다. 그가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가 경전을 탐독했던 것은 그가 지닌 일반적인 유학자의 면모이다. 하지만 그가 도덕경과 장자를 즐겨 읽었다는 것은 그의 삶과 학문이 철저하게 유교적·도학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김상숙의 서체를 흔히 직하체라고 하며 종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이규상은 『병세재언록』,「고사록」에서 “잔글씨의 해서를 잘 썼으며 처음으로 종요체를 잘 소화했다. 세상에서 그것을 직하체(稷下體)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직하체로 일가를 이룬 김상숙의 서예론이 지닌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심수상응(心手相應)의 서예이다. 김상숙은 서예에는 바른 마음(心正)과 손의 기예(手熟)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마음과 손을 수레의 바퀴통과 바퀴에 비유하여 수레는 바퀴통과 바퀴가 일체가 되어 작동하듯이 마음과 손이 일체가 되어야만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둘째, 심외무법(心外無法)의 서예이다. 김상숙이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하는 것이 서예라고 주장한 이면에는 서예가 단순히 손의 기예가 아니라 마음이 근본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글씨를 쓸 때 마음으로 하지 않고, 단지 손에서 법을 구하려고 하면 글씨를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글씨를 쓰는 법은 마음에서 나올 뿐 마음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작자요경(作字要敬)의 서예이다. 김상숙은 글씨 쓰는 방법으로 경(敬)을 제시하였다. 획 하나하나마다 공경을 다하면 저절로 정(精)하고 공(工)하게 되어 비록 재주가 낮은 사람이라도 자기 필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한 마디로 ‘글씨를 쓰는 데 경(敬)이 요체(作字要敬)’라는 것이다.
넷째, 망수망필(忘手忘筆)의 서예이다. 김상숙은 “마음이 손을 잊고 손이 붓을 잊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상숙의 관점에서 보자면, 치밀한 계획에 의거해서 쓴 글씨는 작위이고 조장이며, 불편한 마음에서 나온 뒤틀린 글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은 손을 잊어야 하고 손은 붓을 잊어야 한다. 그것은 손도 잊고 붓도 잊는 망수망필(忘手忘筆)의 서예라고 할 만하다.
김상숙은 문방사우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 가운데서도 흰 토끼, 청설모, 누런 족제비 털 등으로 붓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것은 매우 특별했다. 특히 그가 애호했던 붓은 토끼털로 만든 붓으로, 그것은 세필을 쓰기에 적당하였다. 그가 직하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서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실정과 자신의 처지에 맞는 재료를 이용해 직접 붓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중국의 것보다 우리의 붓․먹․벼루․종이를 높이 평가하고 애호한 것 역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를 널리 지배하고 있던 조선중화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