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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시 연구

Title
이형기 시 연구
Author
김동중
Advisor(s)
박상천
Issue Date
2012-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이형기 시 연구 이형기는 이른 등단과 다작, 다론, 초심시인의 면모를 잘 보여준 시인이었다. 한국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사회적 변혁기와 정치적 과도기를 체험하면서도 비정치적 문학인으로서 또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순수 시인으로서 창작과 시연, 시론과 시선을 위해 필업을 작가였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시적 변환구조에서 보여 지는 사상적 변모와 그가 상재한 시와 시론에 대해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시대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나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형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특징지어진다. 첫째, 끝없이 시험정신을 가지고 시적세계를 확보해나갔다는 점이다. 이형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시인들이 시국이나 시류적인 공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변절 ․ 영합, 은둔 ․ 절필하는 순간에도 꿋꿋이 시작에 임해왔다. 그것은 그가 밝힌 바와 같이 ‘처녀성의 겁탈’이라는 의미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언사로 대변된다. 또한 ‘요동지시(遼東之豕)가 되지 않기 위해 몇 백번씩 죽을 수 있다’는 단단한 작가로서의 포부 역시 그러한 면모를 부추긴다. 󰡔 꿈꾸는 旱魃󰡕 이후 한 번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끝없이 투쟁하면서 자신을 견뎌온 거부와 창출의 시공은 그의 그러한 면모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킨다 하겠다. 둘째는 다양한 시적 변모를 통해 독자적인 시적세계를 개진해 나갔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그로테스크하고 난해한 시를 쓰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시를 너무 쉽게 쓴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그가 늘 자신을 자책했던 점도 이것이었다. 그의 시에서 분석의 틀을 다양하게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정에서 연유된다. 다른 하나는 시작에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자연 친화적인 경향을 추구하다 존재론적 허무를 겪게 되면서 격상되는 초기시와 중 ․ 후기시의 뚜렷한 시적변환이 그것을 말해준다. 󰡔 적막강산󰡕 으로 대변되는 초기시는 자연 친화의 순수서정을 지향하면서 허정(虛靜)과 달관(達觀)의 세계가 투명하게 조명되는 것에 비해 󰡔 돌베개의 시󰡕 를 거쳐 󰡔 죽지 않는 도시󰡕 에 이르는 중기시에서는 음산하고 암울한 어둠의 시어로 환치됨과 동시에 죽음, 절망, 소멸, 허무 등의 시적의식이 깊게 자리 잡으면서 파괴, 해체, 폭력 등의 이미지가 병치되다가 다시 󰡔 절벽󰡕 에 이르러서는 그와 같은 조락과 소멸, 부정과 절망, 파괴와 전율, 문명위기의식의 절박함이 강력한 초월의지로 변모되는 과정이 하나의 순환고리로 엮여진다는 것이다. 셋째는 폭넓은 시론과 평론, 아포리즘을 통해 자신만의 시적세계를 확충해 나갔다는 점이다. 이형기는 󰡔 그해 겨울의 눈󰡕 (1985), 󰡔 오늘의 내 몫은 우수한 짐󰡕 (1986), 󰡔 별이 물 되어 흐르고󰡕 (1991) 등의 시 선집과 󰡔 감성의 논리󰡕 (1976), 󰡔 한국문학과 반성󰡕 (1980), 󰡔 시와 언어󰡕 (1987), 󰡔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 (1991), 󰡔 시란 무엇인가󰡕 (1993) 등의 시론집, 󰡔 서서 흐르는 강물󰡕 (1979), 󰡔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 존재하지 않는 나무󰡕 (2000) 등의 수상집을 통해 일찍부터 자신의 시적 경향과 시창작의 편향을 피력해왔다. 이는 자신의 시 경향을 미리 제시한다는 지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가벼운 시적세계를 형상화 하지 않았다는 점과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것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시와 시론이 공유 ․ 병치될 때 나타나는 무모성과 작위성을 그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넷째는 다각적인 사상적 토대와 시학적 입론을 바탕으로 시적 상상력과 포용력을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그의 시가 단순히 시적정신 구현을 위한 사상적 토대나 입론적 시학에만 얽매이지 않고 철저히 준비되고 짜여진 기반 위에서 지속적으로 시현되었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준다. 먼저 그의 시적 기저를 형성하는 사상은 불교이다. 그가 조계종 종립대학의 불교학과를 나왔다거나 그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거나 「 근대시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 , 「 시와 불교가 만나는 자리」 , 혹은 「 불교 시와 선시」 와 같은 논문과 평론을 썼다거나, 소설 <석가모니>를 썼다는 점에서도 그렇겠지만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날카로운 역설적 수사법이나 정치한 시적변모 과정이 절대허무를 통한 공사상과 제행무상사상, 나아가 윤회사상으로 발현되고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조병화, 이원섭, 이설주, 김관식, 천상병, 장호, 박희진, 박재삼, 고은 등과 맥을 같이 하면서 불교적인 세계관을 감수성 짙은 시어 속에 투영시켜 온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단이었다. 그 중에서도 윤회사상은 우로보로스시학과 함께 그의 시의 사상적 축과 기반, 그리고 시적 변모를 구축하는 양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주도하여 왔다. ‘자연 순응과 달관-파괴와 해체-초월과 생성’으로 이어지는 순행정법 윤회사상을 그 기저로 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입용 하여 ‘죽음-부재-절망-종말’의 역행부정법의 윤회사상을 즉각 시킴으로써 그것에서 초극, 초월하려는 의지를 함축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적경향이 쉽게 들키지 않는 것은 그의 시적세계관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시학적 경향 또한 심후한 기저를 바탕으로 시적형상화에 기여하고 있다. 리리시즘과 데카당의 접맥과 표방, 페시미즘의 원용과 형상화, 패러디와 아이러니의 수용과 확장, 우로보로스의 입용과 시화화 등은 그러한 접근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이형기 시의 주요한 시적 전략 중의 하나가 역설적 시학이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킴과 동시에 시와 시론이 혼융되어 있는 이형기의 시 사상을 읽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읽힌다. 절대적 자유로의 탈출을 기도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그의 역설적 해법은 그가 시에 대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가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입론의 근거를 확신케 해준다. 특히, 매순간 반복되는 파괴와 생성의 표지이자, 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순환적 세계관에 대한 예언적이고 철학적 표현인 우로보로스를 통해 순환고리의 시세계를 형성하고자 했던 점은 윤회사상과 더불어 하나의 견고한 틀로 작용한다. 그의 시적세계 전반에 표출된 서정 - 주지 - 서정의 윤회적 순환고리와도 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울러 그의 시론에 깊게 접맥되어 있는 보들레르, 에밀 시오랑, 이반 고올, 버나드 쇼, L.셰스토프, 러스키 등이 주창한 자유주의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절대적 상상에 의존하고 있는 시적 기반에 깊이 개입함으로써 그가 철학적 언어와 문체 탐구에 얼마나 깊이 경도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면모로 인해 한국시사에서 점유하고 있는 이형기의 족적은 남다르다. 아직도 그에 대한 연구는 진행 중이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의 시적세계와 시력과 시적정신을 종합해 볼 때 그가 한국시사에서 남긴 족적은 완연하다 하겠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37784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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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LANGUAGE & LITERATURE(국어국문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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