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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dvisor정하미-
dc.contributor.author김성희-
dc.date.accessioned2020-02-25T16:31:29Z-
dc.date.available2020-02-25T16:31:29Z-
dc.date.issued2015-02-
dc.identifier.uri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29009-
dc.identifier.uri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26027en_US
dc.description.abstract국문요약 이 논문은 일본 개국(1868년)으로부터 시작된 병식규정․표준식료․국민보건식이라는 식생활정책의 변천과정을 통해, 근대 일본의 식생활이‘영양’이라는 근대적 개념을 반영하면서 ‘일본식(日本食)’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탐구한 연구이다. 일본이 외국에게 문호를 개방하게 되면서 정부는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정책을 추진해간다. 봉건제도라는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사적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변혁이외에도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질서형성의 기반이 된 것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내면화한‘신체’였다. 서구인들과 같은 우수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계몽지식인들은 서구의 식생활정책을 도입한다. 당시 서구는 신체양성과 관련하여 영양학, 사회진화론, 생물학, 공중위생학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체계를 형성해 가는 중이었다.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과제로 문명국가를 지향하고 있던 정부가 국민들의 신체양성을 위해 이러한 지식을 도입하고자 했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서구적 무장으로 체력양성이 시급했던 군대에‘병식규정’으로 쇠고기를 채용하고 병사들의 체력증강을 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 식생활과 서구의 새로운 식생활은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동서의 문화충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각기병 논쟁’ 혹은‘병식논쟁’이라 불리는 각기병의 원인논쟁이다. 이 논쟁의 요지를 보면 먼저 미식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전통적 식생활이 각기병의 원인이 되는가라는 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서양식을 받아들인다는 점이 쟁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의구심속에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온 전통적 식생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서구식 식단도입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결국 해군은 각기병예방을 위해 서양식을 도입하고 육군은 일본식을 유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양군의 선택은 전혀 다른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양군 모두‘영양’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각기병논쟁이 남긴 공적으로 논쟁과정을 통해‘영양’이라는 근대적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를 기반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정책이 만들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당시 육군군수부에서 병식정책에 관여했던 모리 오가이는 서양식이란‘빵과 고기’로 구성된 식사이고 일본식이란‘밥과 반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똑같은 구조라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일본식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게 된다면‘영양의 균형’을 이루게 되어 굳이 서양식/일본식에 대한 우월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며 서양식도입론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정책, 즉 「표준식료」를 제정하여 국민들의 신체양성에 활용하게 된다. 「표준식료」는 돈카츠, 카레라이스, 고로케라는 절충요리로 만들어져 단백질과 지방보충은 물론 하루필요열량인 2,400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도록 제정된 표준식단이다. 문제는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을 거치면서 정부가 이러한 식생활정책을 담론으로 권력화하며 국민들의 신체양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군수병력뿐만 아니라 이를 충원해 줄 예비병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식생활과 관련된 정책 역시 개인의 신체관리뿐만 아니라 인구조절과 관련된 사회적 신체에까지 영향력을 확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표준식료」를 「국민보건식」으로 변경하고 이에 맞추어 식량을 배급하게 된다. 국민식의 기준은 국민 전체의 균등한 식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소의 열량으로 최적의 영양을 고려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식단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일본인들의 식생활은 그 기본적인 틀은 1즙1채라는 전통적 식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영양소의 비율을 고려한’전혀 다른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서양식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단백질과 지방부족이라는 전통적인 일본식의 결함을 극복하고‘일본식’이라는 식단을 통해‘영양의 균형’을 실현한 것이다.-
dc.publisher한양대학교-
dc.title근대 일본의 西洋食 수용방식 연구-
dc.title.alternativeA Study on the Reception of Western Food in Japan-
dc.typeTheses-
dc.contributor.googleauthor김성희-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Kim, Sung Hee-
dc.sector.campusS-
dc.sector.daehak대학원-
dc.sector.department일본언어·문화학과-
dc.description.degreeDoctor-
dc.contributor.affiliation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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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JAPANESE LANGUAGE AND CULTURE(일본언어·문화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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