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 0

1895∼1910년 서북지역 공ㆍ사립학교 설립 연구

Title
1895∼1910년 서북지역 공ㆍ사립학교 설립 연구
Other Titles
Establishment of Public and Private Schools in northwest provinces of Korea from 1895 to 1910
Author
임인재
Advisor(s)
박찬승
Issue Date
2015-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본 연구는 1895년부터 1910년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한 서북지역 22개의 공립소학교와 502개의 사립학교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서북지역 공ㆍ사립학교의 설립 과정, 설립 주체, 설립 취지 등을 규명하여 이 시기 서북지역 교육의 실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 정부는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신교육을 위한 학제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신교육 중심의 정책을 통해 1896년부터 전국에 공립소학교가 설립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교육정책의 재검토가 제기되었으나, 소학교 중심 정책은 계속 유지되었다. 사립학교의 경우 1908년 『사립학교령』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설립ㆍ운영되었다. 한편 서북지역에서는 이 지역의 독특한 사회ㆍ경제적 특징으로 인해 삼남지방과 같은 사족에 의한 향촌지배가 수립되기 어려웠다. 서북지역의 향촌 지배층이었던 향인은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세력도 지역 내에서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서북지역은 내부의 정치적, 경제적 특성과 개신교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서양의 문물, 특히 서양교육으로 대표되는 신교육을 받아들이기 수월하였다. 따라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고, 다양한 교육 관련 활동이 나타날 수 있었다. 서북지역의 공립소학교는 1896년부터 1905년까지 총 22개교가 설립되었다. 평안도의 경우 경기, 함경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공립소학교가 설립되었다. 공립소학교가 설립된 지역은 대부분 상업이 활발하거나 개신교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북지역 사립학교의 경우 설립 과정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894년부터 1900년까지는 사립학교의 형성기로 대부분 대도시를 중심으로 학교 설립이 이루어졌다. 1901년부터 1905년까지는 사립학교가 점차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국권회복과 실력양성을 주장하며 교육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사립학교 설립이 최절정에 이른다. 확인된 502개교 중 409개교가 1906년부터 1910년 사이에 설립된 학교이다. 이 시기 서북지역의 대부분의 행정구역에 1개 이상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 설립 취지서를 통해 학교 설립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문명개화론’과 ‘자강운동론’에 입각하여 학교 교육을 통해 힘을 키워 국권을 회복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실용지식이나 특수교육과 같은 각 학교의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학교 설립 취지서를 학교의 재정 확보를 위한 광고의 목적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서북지역 공립소학교의 교원은 정부에서 파견한 교원과 지방에서 선발한 부교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재정 부족으로 인해 교원의 파견이 어려워지면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사립학교의 경우 자체적으로 교원을 모집하였으나, 점차 학회에서 운영하는 교원양성소를 통해 교원을 충원하였다. 서북지역 학교 설립에는 다양한 설립 주체가 등장하였다. 설립주체는 개신교 선교사 및 신자, 지방관, 그리고 유림, 향인, 상인 등으로 대표되는 지방유지로 나누어진다. 공립소학교의 경우 대체적으로 지방 수령 및 유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는 다른 설립주체에 비해 정부의 교육 정책에 협조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사립학교의 경우 위에 언급한 각각의 설립주체가 독립적으로, 혹은 둘 이상의 설립주체가 협력하면서 학교 설립을 진행하였다. 개신교 선교사의 경우 초기 학교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선교사들은 조선을 구제의 대상으로 파악하여 서구문명을 배워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입장은 서북지역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서북지역 내의 신교육의 습득이 매우 빠르게 전개되면서 차츰 민간계열이 학교 설립을 주도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또한 1907년부터 조직되는 면학회, 서우학회, 서북학회 등의 활동은 서북지역의 사립학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28000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26904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S](대학원) > HISTORY(사학과) > Theses (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