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진보와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재고: 화학혁명 사례를 중심으로

Abstract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축적되며 발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때문에 과학지식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서 과학적 진보의 문제는 일찍이 중요한 주제로 인식되었다. 현대 과학철학에서 과학적 진보에 대한 논의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출간을 계기로 하여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쿤은 『구조』를 통해 과학은 혁명에 의해 진보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과학이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여러 과학철학자들은 쿤의 혁명적 과학관이 상대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혁명적 과학관은 과학적 실천을 이해하는 타당한 관점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공약불가능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때문에 공약불가능성 개념이 제기하는 문제를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혹은 해소)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것은 과학적 진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논점이다. 본 논문은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재고함으로써 과학적 진보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문에서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된다. 이는 『구조』에서 제시된 방법론적(문제 영역의 변화), 의미론적(개념 수준의 변화), 그리고 지각적(세계의 변화) 공약불가능성이다. 폴 호이닝겐 후엔은 『구조』에서 제시되는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쿤이 ‘세계’라는 용어를 모호하게 사용함에 따라,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이닝겐 후엔은 쿤이 『구조』 이후에 발전시킨 생각을 정합적으로 재구성해 ‘세계 구성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호이닝겐 후엔은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쿤의 견해가 결국 심각한 방법론적 난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분석자의 위치 문제’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이닝겐 후엔 자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검토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분석자의 위치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과학사 사례인 18세기 화학혁명을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이는 쿤이 과학혁명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 화학혁명을 중심으로, 공약불가능성의 방법론적 문제와 과학적 진보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다뤄진다. 먼저, 세계 변화 논제에 대해 호이닝겐 후엔과는 다른 방식의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한다. 이는 김미경의 연구에 근거하여 논해진다. 그는 18세기 화학자들의 과학적 실천을 분석함으로써 지각적 공약불가능성을 재고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본문에서 화학자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 변화가 요구되지 않음을 논증할 것이다. 다음으로 의미론적,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 논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공약불가능성의 방법론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장하석의 연구를 검토한다. 그는 다원주의를 추구할 때,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은 오히려 과학의 진보를 위해 생산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끝으로, 이상의 논의를 마친 후에 다음의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는 혁명적 진보 개념에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탐색과 그 과정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다원주의가 실제로 과학적 진보를 가장 적절하게 이해하는 입장인지의 여부는 서로 독립된 문제라는 논점이다. 때문에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는 장하석의 다원주의가 과학적 진보에 대해 어떤 이해를 제시하는지, 쿤이 취하는 입장과의 비교를 통해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본 논문은 쿤의 공약불가능성 개념이 갖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와 결부된 과학적 진보의 의미에 대해 재고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