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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중국 군주 제재 사론 산문 연구

Title
17~18세기 중국 군주 제재 사론 산문 연구
Author
김영은
Alternative Author(s)
Kim, Young Eun
Advisor(s)
정민
Issue Date
2020-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문학·역사·정치의 상관관계 속에서 17~18세기에 창작된 中國 君主 題材 史論 散文이 어떻게 당대성을 획득했으며, 나아가 사론 산문에 내재된 각 黨派의 왕권 인식과 정치적 담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관료 사대부의 문학 활동은 당대의 정치와의 강한 연대성을 지향하며 시작된다. 胡亂 직후, 사대부는 조선 왕조의 정체성을 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설정하고자 했다. 즉, 중화주의를 道統만이 아닌 宗統의 차원에서도 확립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문단에 본격적으로 군주를 제재로 삼은 사론 산문이 등장하였다. 사대부가 사론 산문을 택한 이유는 자신의 역사적 理解를 문학적 작업을 통해 정치적 利害와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작품에는 일차적으로 작가 개인의 인생 궤적과 가치관이 투영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했다. 특히 예송논쟁과 노소분기를 연달아 겪으면서 사론 산문은 조정의 정치적 향방에 따른 영향을 받게 된다. 이중에서 특히 군주를 제재로 한 논의는 당대 군주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였고, 따라서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은 응당 정치일변도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정치·역사·문학이 등가를 이루며 정치적일수록 더욱 문학적이 되는 형국이었다. 사론 산문은 중국 역대 군주 중에 箕子, 周武王, 秦始皇, 項羽, 漢高祖, 漢文帝, 唐太宗을 가장 주목하였다. 이들은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는 중국의 역사에서 聖君과 賢君, 昏君과 暴君의 전형성을 지닌 군주들이었다. 기자와 주 무왕은 중화의 도통과 존주론의 확립되는 과정에서 거론되었다. 진 시황의 만리장성은 군주의 폭정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지만, 호란 이후 화이론이 재조명되면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한 무제는 왕도정치에서 어긋나는 행보로 인해 비판적 대상이 되었다. 한 문제는 조선 문인이 추구한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外戚을 등용하지 않은 사례는 당파에 따라 평가를 달리했다. 당 태종은 군주의 修身을 강조하는 논의에서 거론되었다. 성군으로 평가받는 태종이지만 사론 산문에서는 그가 명성만 추구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 고조와 항우는 지도자의 품성과 자질, 인재 경영의 측면에서 거론되었다. 특히 고조를 인재 등용에 탁월한 군주로 묘사하였다.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은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적 포폄이 아니기에 창작자의 내면 의식이 그대로 노출되진 않았다. 이들은 중국의 군주와 역사라는 일정 정도의 거리를 활용하여 실제 정치적 의도는 감췄다. 그러므로 사론 산문은 정치적 함의를 내재한 중층적 글쓰기의 형식을 지녔다. 노론 문인은 중국 군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며 자파의 세력을 강화하는 논리를 폈다. 첫째, 송시열의 춘추일통론은 기자 홍범의 정신이 군주도 아닌 노론에 의해 전승된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둘째, 자파의 세력 확보를 위해 외척 문제는 긍정했지만 부인들의 정치 관여는 경계했다. 셋째, 군주를 사대부와 동일한 선상에 놓고 치인보다 수신의 덕목을 강조하였다. 이는 군주의 수기에 초점을 두어 군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와 신하 중심의 공론 정치를 지향하는 노론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소론과 남인에게 왕권을 수호하는 것은 노론의 공세를 막고 정파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첫째, 時勢를 파악하는 것과 權道를 중시하는 논리를 내세워 노론과는 다른 춘추대의론을 제출하였다. 둘째, 군주 중심의 국정을 지지하며 군신간 의리를 중시했다. 기자와 한 문제를 군주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존재이자,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로 활용했다. 그들의 덕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군주를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의 모습으로 상정했다. 셋째, 이들은 간언하는 신하로서의 직분을 강조했다. 소론계 문인들은 정치 주체로서 군주의 권위를 긍정하면서도 올바른 간언을 통해 신하가 군주를 君師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반해 남인은 군주의 차별적 위상을 강조하며, 국왕을 위해 간언하는 예법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은 역사·문학·정치가 한데 자리한 글쓰기의 형식이었다. 때문에 당대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들 관계의 양상을 고찰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군신과 당파간의 대립이 격화된 시대에서 17~18세기 지식인들은 자신의 역사적 인식을 문학적 대응으로 풀어냈다. 본 연구는 이점에 주목하여 그간 축적된 사학계와 정치학계의 논의와 연동하여 당대 지식인의 학문적 계보와 정치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의 정치성은 호란 이후 조선 군주의 정체성을 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며 형성된 것이다.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은 개인의 가치관·학문관에 따른 결과물이면서 외부적 상황, 즉 그들의 속한 당파가 추구하는 정치적 입장과 왕권 인식을 대변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주 제재 사론 산문은 당대적 의미를 획득한 것이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23234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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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LANGUAGE & LITERATURE(국어국문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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