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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기 사찰 건축 연구

Title
백제 사비기 사찰 건축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Buddhist Temple Architecture in Baekje Sabi Period
Author
장소영
Alternative Author(s)
Chang, So Young
Advisor(s)
한동수
Issue Date
2019-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백제는 불교문화가 주류였고, 백제의 사찰은 조형감각과 기술이 뛰어나게 구비된 건축문화의 대표적 산물이다. 불교는 흔히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구분하는데, 백제는 대승불교를 중심으로 강한 호국에의 염원을 실천하였다. 특히 사비로 천도한 이후 백제는 왕권 강화와 호국에의 강한 염원과 맞물려 대부분의 사찰을 왕실에서 세움으로써 사비기 사찰은 기본적으로 관사에 해당한다. 관사는 국가가 직접 사찰을 관리, 감독하는 일종의 관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호국의 일환으로서 왕실에서 사찰을 세우고 운영하는 제도적 특징은, 동시대 북조 국가들이 불교를 통제하고 제도적으로 운영했던 면모와 동일한데, 이것은 사비기 불교와 북조 불교와의 중요한 공통점이기도 하다. 왕과 호국불교, 그리고 관사의 구도에서는, 관사를 통제함과 동시에 호국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상위 기관으로서의 사찰이 당연히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대관사는 왕권 강화,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호국 불교, 관사들의 상부기관 필요성에 따라 마련된 일종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관사의 설립과 관사들의 중심사찰인 대관사의 설립은 백제뿐만 아니라 동시대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행했다. 남북조의 여러 나라에 호국불교와 왕권강화를 위해 관사와 대관사가 세워졌고, 일본에서도 관사와 대관사가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이것은 대관사가 국가의 도시계획 속에 포함되어 계획적으로 지어졌으며, 국가가 주도하여 사찰을 세우고 대관사를 중심으로 관사들을 관리, 운영하는 제도가 한·중·일 세 나라의 국제적 공통 현상 면모였음을 의미한다. 사비기 관사와 사찰의 건축적 특징은 가람배치, 기단과 초석, 벽, 기와와 치미 등과 같은 유구와 출토된 유물 분석을 통해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백제 사비기 사찰의 가람배치는 주로 1탑1금당의 배치를 가지며, 남북축으로 일직선상에 놓인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강당좌우의 부속건물지, 회랑 북쪽의 동·서건물지의 배치와 회랑의 유무에 따라서 Ⅰ-Ⅵ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비기 사찰 중에서 회랑이 이어지지 않고 동·서회랑지와 남회랑지가 나누어진 구조가 보이는데, 이러한 구조는 능산리사지, 정림사지, 미륵사지에서 보이며 이는 사역의 배수를 위한 것으로 본다. 사비기 사찰의 탑과 금당에서는 대부분 이중기단을 사용하였으며, 공력을 많이 들인 가구식기단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단의 축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량이 가능한 것은 왕실이며, 사찰 건립은 대규모의 국가 차원의 토목사업이기 때문에, 이중기단 또한 관사의 주요 특징으로 파악될 수 있다. 벽체는 출토 유물과 남아 있는 유구의 상태로 보아 토벽이 주류로 나타난다. 또 석벽, 전벽(塼壁), 회벽(灰壁)도 있는데, 회벽은 6세기 무렵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으므로, 7세기 이후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새롭게 유입된 건축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 백제 사비기의 와당은 중국 북조와 수·당과의 교류를 확인시켜 주며, 와당은 궁성과 왕실에서 건립된 사찰에서 사용되었으므로, 관사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부재이다. 백제에서 완형의 치미는 부여 왕흥사지, 부소산사지, 익산 미륵사지에서 보인다. 치미는 기와건물에 설치하지만 대부분 궁이나 사찰에서만 출토된 것으로 볼 때 건물에서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가람배치와 이중기단, 초석, 벽체, 기와, 치미 등에서 나타나는 문화와 기술력은 백제의 관사와 사찰이 국가에서 많은 공력을 들여 건립한 중요한 건축물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남북조의 불교와 사찰 문화, 그리고 새롭게 유입된 수, 당의 문화가 모두 담겨있으며 백제는 이러한 기술력을 활용하여 창의적인 백제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였다. 사비기 사찰은 왕권강화와 호국의 염원을 실행하는 장소로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도량이었기 때문에 결코 소홀할 수 없는 건축 행위이자 백제의 국제적 문화교류의 실질적 교량이자, 전통유산으로서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00169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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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ARCHITECTURE(건축학과) > Theses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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