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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시베리아 망명지 경험과 기억하기의 역사성과 정치학

Title
이광수의 시베리아 망명지 경험과 기억하기의 역사성과 정치학
Other Titles
Lee Kwang-soo’s Experience of Siberian Asylum and History and Politics of Memory
Author
차혜영
Keywords
이광수 대륙 체험의 기억하기와 서사화; 기억하기의 역사성; 기억하기의 정치학; 이광수; 망명지; 대륙방랑; 대륙체류; 상하이; 목릉;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치타; 「그의 자서전」; 「나의 고백」; 「잊음의 나라로」; 「민족적 경륜」; 수양동우회 일제검거; 안창호 수감; 반민특위;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
Issue Date
2018-12
Publisher
국제비교한국학회
Citation
비교한국학, v. 26, No. 3, Page. 127-172
Abstract
본고는 1914년 이광수의 대륙(상하이, 목릉, 블라디보스토크, 치타) 체류 경험을, 긴 시간이 지난 후 그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쓰는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시기적으로 구분해서 연구했다. 왜 어떤 방식으로, 원체험인 대륙 체험을 고백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서사화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과거사를 처리하며 미래 방향을 모색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이광수의 ‘대륙 체험’의 기억하기와 서사화를 살펴보았다. 이는 이광수 문학연구에서, ‘대륙 체험의 장소 =공간인식’, ‘체험의 고백 =자서전적 쓰기’로 이원화된 연구경향을, ‘기억하기의 역사성의 실체와 의미’를 묻는 연구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다. 논의를 통해 본고는 그의 1914년 망명지 대륙 체험은 다음 세 가지의 역사적 전환 시기에 기억-서술되었음을 밝혔다. ①1925년 「민족적 경륜」이 보여준 친일 자치론자라고 공격받던 시기, ②1937년 동우회 탄압이 야기한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좌절의 배경하에, 이광수 자신의 민족운동자도자로서의 체념과 황국신민 신봉자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의 시기, ③1948년 분단의 확정과 단독정부 수립기, 반민족 친일파라는 오명에서 반공민족주의 지도자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1914년 해외 독립운동 근거지의 망명독립지사들에 대해서는 당파적 분열에 열중하는 무능한 지도자들이라는 인식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한편 ‘과거체험의 사실성’ 및 ‘고백의 진정성’이라는 기제를 통해, 그리고 각 시기마다의 새로운 에피소드의 창출을 통해, 해외 망명지 조선인 동포 및 조선민족의 미래에 대한 조망을 변경했다. 그리고 이 해외 조선인 동포를 보는 각 시기별 시선 변경은, 사실은식민지 조선의 통치체제의 변화, 조선 내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당시 이광수의입장과 긴히 연동되어있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periodically studied the experiences of Lee Kwangsu in the continent (Shanghai, Moorung, Vladivostok, Cheetah) in 1914, and the historical․political context in which he remembered and rewritten the experience after a long period of time. Why, in what way, is it confessing the experience of the continental experience? How did he handle past history and look for future directions? From the point of view, I examined the memory and narrative of Lee Kwang-soo’s ‘continental experience’. In the Lee Kwang-soo literature study, the study tries to convert the research tendency that has been diverted to “the place of continental experience=space recognition” and “the confession of experience =autobiographical writing”. Through this discussion, I found that his 1914 experience of the Asiatic Continent was remembered during the following three historical transition periods: 1) the period when the “national economic dispatch” demonstrated by the “national economic dispatch” in 1925, 2) the background of the frustration of the bourgeois nationalist movement caused by the suppression of the 1937 dong-woo society, and the rebirth as ‘pro-Japan collaborator’ of Lee Kwang- The timing of the transition, and 3) the transition from the stigma of the division of 1948 to the establishment of a sovereign government and ‘anti-national pro-Japanese’ tactics to ‘anti-communism nationalist leaders’. In this process, it was consistently perceived by 1914 as the incompetent leaders who were enthusiastic about partisan division in the exiled independence crusaders of the overseas independence movement base. Lee Kwang Soo changed the view on the future of Korean refugee Koreans and the Korean people through the mechanism of ‘reality of past experience’ and ‘authenticity of confession’, and by creating new episodes for each period.
UR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31999http://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98852
ISSN
1226-2250
DOI
10.19115/CKS.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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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ANGUAGES & CULTURES[E](국제문화대학) > KOREAN LANGUAGE & LITERATURE(한국언어문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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