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男竝唱 심청가의 음악적 특징과 의의

Title
20세기 男竝唱 심청가의 음악적 특징과 의의
Other Titles
A study on the musical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Gayageum Byeongchang Simcheongga by male performers in 20th century
Author
서은영
Advisor(s)
김영운
Issue Date
2018-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20세기 전기 가야금병창의 남성연주자들은 판소리와 가야금산조에서 일가를 이룬 명인들로, 근대화 되어가는 전통음악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물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가야금병창’이었다. 가야금병창은 혼자 노래하며 가야금을 연주하는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공연물로 주목을 받으며 다수의 연주자를 배출하게 된다. 전통음악의 근대화 과정에서 1인으로 이루어지는 선율 반주의 노래는 20세기 전통음악계를 주도하던 남성연주자들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되고 완성되었다. 본고는 가야금병창의 형성과 완성을 주도하였던 20세기 남병창이 갖는 음악적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논의의 전개는 전기(1900~1945)와 후기(1946~현재)로 시기를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선, 20세기 전기 남병창은 단가와 판소리의 눈대목, 각 지역의 민요, 그리고 창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악곡을 불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당시에 활동하던 남병창은 독립된 장르로 가야금병창을 확립시키기 위해 다양한 음악적 모색을 하면서 다인다색의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후기의 남병창은 수적 열세와 함께 대부분 장르의 악곡이 축소되는 양상으로 변모되어갔다. 하지만 유일하게 심청가만 후반부를 세밀히 나누어 악곡의 확장을 이루는데, <봄이 가고>, <심봉사 좋아라고>, <못가겠소>, <아침조반>, <어이가리너>, <허허 뺑덕이네가>, <날이 차차 밝아오니>, <심봉사 좋아라고(목욕)>, <허허 내가 죽었구나>, <예, 소맹이 아뢰리다>, <방아타령(중중모리)>, <방아타령(자진모리)>, <방아타령(휘모리)>의 13곡으로 세분되어 불리고 있다. 이렇듯 남병창이 특히 심청가의 후반부 대목을 가장 선호하는 악곡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대목들이 심봉사가 노래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병창이 춘향가의 <자탄가>를 선호하여 불렀던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즉 주된 창자가 남자의 노래냐 여자의 노래냐에 따라 남병창과 여병창에서 집중하고 선호하는 악곡이 달라진 것이다. 다음으로, 20세기 남병창 심청가의 사설구조와 장단, 선율구조와 악조, 가야금반주형 등을 통해서 연주자별 차이점과 시대적 변모양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전기의 남병창은 심상건, 오태석, 한성기, 정남희의 심청가 악곡을 분석하였다. 전기 남병창에서 나타난 각각의 악곡은 대부분 2~4단락에 걸친 사설로 노래하였고, g′본청 계면조 악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가야금반주형은 본고에서 제시한 생략형, 골격형, 북반주형, 동일형 등이 골고루 나타났지만, 가야금이라는 선율악기가 갖는 반주의 특성보다는 북반주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후기의 남병창은 정달영과 강정열의 심청가 악곡을 분석하였다. 후기 남병창에서 나타난 각각의 악곡이 갖는 사설구조와 악조는 전기와 유사하였다. 하지만 가야금반주형은 대부분의 악곡에서 동일형이 지배적으로 나타나 전기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였다. 또한 노래와 가야금반주가 마치 이중주와 같은 연주로 변모한 것도 후기 남병창이 갖는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후기 남병창 정달영에 의해 완성되었다. 정달영은 간주의 장단 수를 늘리면서 화려한 선율 진행을 도입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외에 남병창과 여병창의 심청가를 분석하여 살펴본 결과, 전기에 있어서는 남병창과 여병창이 사설구조와 악조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전주ㆍ간주ㆍ후주의 활용은 여병창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후기의 여병창은 남병창과 같은 악곡이라 하여도 사설의 축약이 나타났으며, 가야금반주형에 있어서도 노래를 위주로 한 골격형의 반주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각자 개성을 가지고 가야금병창이라는 장르적 모색을 하였던 전기 남병창의 음악은 후기의 정달영에게로 모아져서 전승되었고, 정달영은 심청가를 중심으로 다시 남병창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 강정열에게 전승하였다. 20세기 남병창이 갖는 음악사적 의의는 노래하면서 가야금연주를 함께 하는 가야금병창이라는 효율적이면서도 경제적인 1인 공연물을 재창조하여 당시의 음악계를 주도하였다는 것이고, 이들의 음악은 후기 정달영을 거쳐 현재의 강정열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URI
http://dcollection.hanyang.ac.kr/common/orgView/000000107589http://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75509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S](대학원) > KOREAN TRADITIONAL MUSIC(국악학과) > Theses (Ph.D.)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