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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年間 晉書의 “世”, “民”, “淵” 및 “治” 避諱 硏究

Title
貞觀年間 晉書의 “世”, “民”, “淵” 및 “治” 避諱 硏究
Author
최태훈
Keywords
진서; 피휘; 정관; 세; 민; Jin-shu; Bihui; Shi; Min; Zheng-Guan; 晋書; 避諱; 世; 民; 貞觀
Issue Date
2012-11
Publisher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Citation
동아시아 문화연구(Journal of East Asian cultures), 2012, 52, P.181~205
Abstract
『晉書』는 唐나라 太宗의 지시로 房玄齡 등이 완성한 晉 王朝의 正史이다. 1974년에 北京 中華書局에서 출간된 『晉書』 표점 교정본은 자타공인의 영향력을 가진 결정판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판본은 宋代의 殿本 을 중심으로, 그 후 간행된 명청대 판본을 참고 하여 재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본도 태생적 한계로 인한 避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책에는 당태종의 이름 “世”와 “民” 두 글자를 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존재하며, 이와 동시에 이 두 글자를 피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이 한 책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것인가? 房玄齡 등이 역사서를 편찬했을 당시 과연 “世”와 “民”字에 대해서 확실히 피하였는가? 혹은 편찬이 된 후에 唐代 사람들이 책을 베끼는 과정에 諱를 추가한 것인가? 이 두 글자의 피휘 여부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라 초기 『晉書』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貞觀年間 『晉書』의 완성 當時의 원형은 과연 어떠했는지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唐代의 황제가 바뀔 때마다 피휘 대상 글자가 늘어 날 수 있으며, 책을 정리하는 학자가 많음에 따라 완벽한 교정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晉書』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피휘 대상 글자와 1974년 중화서국 판본에서 보이는 모습은 차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古典文獻을 교감하는 원칙대로 충분한 증명을 통해 貞觀年間 『晉書』의 원 모습을 찾아보려 한다. 다만 연구의 범위를 축소하여 앞서 언급한 “世”와 “民”字의 연구에 한정하기로 가겠다. 전해져 내려온 여러 판본의 종합체인 중화서국 『晉書』가 “世”와 “民”자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를 조사하여 古典文獻學의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그 방법은 아래와 같다. 첫째, “世”, “民”의 피휘에 관한 태종시의 조령과 관련된 문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當時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둘째, 태종 李世民과 아버지 李淵의 이름이 74년 중화서국 본 『晉書』에서 얼마나 피휘 되었는지, 그 실례를 조사해 수량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셋째, 『晉書』 74년 본에 등장하는 고종 이름 “治”에 관한 피휘 이유를 다양한 각도에서 논증하도록 하겠다.The author of this paper addresses a question on the irregularities of Bihui phenomena shown in the current volume of 『Jin-shu, 晋書』. The study focuses on "Shi" and "Min" to avoid too wide scopes of the question. The previous literature such as Li, Ci-Ming, Qian, Da-Xin, etc. was introduced and reviewed. The findings of this study are presented in the following. First, the reason why "Shi" and "Min" were used not by following the convention of Bihui is proved that it was based on the order and policy from Taizong. Moreover, it is also proved that the phenomena of Bihui in relation to "Shi" and "Min" were not presented in the other documents at that time. Second, the author using a table compares the phenomena of Bihui in "Yuan" with the one in "Shi" and "Min" shown in 『Jin-shu』. "Yuan" was not used directly because the writer followed the conventional order of Bihui; in contrast, "Shi" and "Min" were used directly in many places. Although the original volume of 『Jin-shu』 was modified later on the basis of another Bihui, the quantitative differences in the cases of "Shi" and "Min" without Bihui can be the evidence proving that Bihui was not already used for "Shi" and "Min" in the times of Taizong. Third, this study analyzes the phenomenon of Bihui in the case of Gaozong`s name, "Zhi" presented in the current volume of 『Jin-shu』. Interestingly, many cases of Pihwi of "Chi" are discovered although 『Jin-shu』 was written in the age of Zheng-Guan when Li, Shi-Min ruled the country. The father of an emperor was even addressed by the original first name without Bihui, to say nothing of the reason why the name of his son should be the case of Bihui. Thus, it makes sense to tell that the case of Bihui of "Zhi" was added by people from the following generations. In conclusion, when Fang, Xuan-Ling and others published 『Jin-shu』, they did not use Bihui for Taizong`s name, "Shi" and "Min" if they were used separately. Furthermore, the cases of Bihui shown in the current volume of 『Jin-shu』 were additionally modified in the process of copying and rewriting of the book by people from the Tang Dynasty.
URI
http://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714443http://hdl.handle.net/20.500.11754/49997
ISSN
1738-933X
DOI
10.16959/jeachy..52.20121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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