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0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Title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Author
김용헌
Keywords
도학; 봉성군; 사림; 을사사화; 주자학; 퇴계 이황
Issue Date
2014-09
Publisher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Academia Koreana
Citation
한국학논집 / Keimyung Korean Studies Journal, 2014, 56(56), p.141-175
Abstract
퇴계 이황은 봉성군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신진 사류들이 이황을 종주로 삼은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그가 훈척 세력에 맞선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중년 이후 현실 정치에서 떠나고자 했던 일관된 의지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이 반복적으로 벼슬을 버리거나 받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염증, 나아가 저항의 표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둘째, 이황이 젊은 사류들과 역사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인데, 그는 무오사화는 물론 기묘사화 역시 현인과 군자가 화를 당한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그가 신진 사림들과 사림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같이하면서 정치적 동류의식을 공유했음을 함축한다. 셋째, 그의 학문적 성취 때문인데, 그의 학문적 성취는 한마디로 사설邪說을 억누르고 정학正學, 다시 말해 주자학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황은 다양한 저술 작업을 통해 상산학, 양명학, 리기일물설 등 이단 내지이설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 과정을 통해 리를 최고 범주로 하는 주희의 철학이 조선 도학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종합하자면, 이황이 사림의 종주로 자리매김된 것은 연속된 사직과 출사 거부, 신진 사림들과 역사인식 및 정치적 동류의식의 공유, 그리고 이설 비판을 통한 주자학의 이론 정립 등이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URI
http://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918108http://hdl.handle.net/20.500.11754/48222
ISSN
1738-8902
DOI
10.18399/actako.2014..56.004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S](인문과학대학) > PHILOSOPHY(철학과) > Articles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