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에 씌어진 시편들은 환희와 좌절, 갈등과 화해, 저항과 순응, 반목과 평정, 반성과 변명의 서사를 고스란히 육체화하면서 다양한 무늬를 우리 문학사에 수놓게 된다. 식민지 시대부터 활동했던 이들은 물론, 이 시기에 등단하는 신인들까지 그 창작 주체의 폭은 매우 큰 것이었고, 그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의 너비는 엄청나게 넓고 화려한 것이었다. 먼저 조선문학가동맹 소속 시인들의 작품은 날카로운 정치 의식을 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분단 극복 혹은 외세 극복의 투쟁 의식을 고취하는 강렬한 목적의식성을 띠기도 했다. 시의 순수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시인들은, 역사적 자아와 실존적 자아를 서정성 안에서 통합하는 시의 역할을 견지했다. 이들은 높은 예술성에 의한 서정시의 권역 개척, 보편적인 인생론적 성찰, 자연이나 일상에 대한 시적 천착 등을 주제로 하는 시편들을 쏟아내어 우리 현대시의 성숙에 기여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때는 저항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와 이육사가 발견되고 착근하는 시기이다. 일제 말기의 정신사적 파행이 결국 윤리적 파탄으로 귀결하지 않고 저항의 맥락을 줄기차게 형성했다는 것을 증명해낸 이 시인들의 존재와 그 발견은 해방 후 우리의 소중한 지적, 정서적 자산으로 승화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