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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나남(羅南)의 군기지 건설과 군사도시화

Title
일제하 나남(羅南)의 군기지 건설과 군사도시화
Other Titles
The Establishment of Military Bases and Military City in Nanam under Japanese Rule
Author
김홍희
Alternative Author(s)
Kim, Hong Hee
Advisor(s)
박찬승
Issue Date
2017-0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이 글은 나남이 군기지로 선정되는 배경으로부터 군기지로의 건설 과정, 군대의 주둔, 그리고 나남의 군사도시화 과정에서 보여주는 특징 등에 대해 밝혀보려고 시도된 것이었다. 기존의 연구가 대부분 용산을 비롯하여 남한에 주둔했던 일본군 군사기지 연구에 집중되어 왔으며, 나남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주제에 주목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군사적 침략을 본격화했다. 1904년 2월 23일 조인된 한일의정서를 근거로, 일본은 한반도 내 많은 토지를 군용지로 강제로 수용하여 군대를 주둔시켜 나갔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위해 청진, 나남, 회령 지역을 군용지로 침탈하여 군사시설을 집중 배치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나남을 주목하였는데, 그곳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만강 하구로부터 약 10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일본 본토로부터 해상으로 접근이 용이한 청진항을 배후지로 가지고 있어 군수물자와 병력의 이동에 매우 유리하였다. 그리고 나남은 사방이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어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한 일본은 나남에 군기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나남의 군기지 건설 시기를 제1차, 제2차로 구분하여 군사시설물을 갖추어 나갔다. 일본은 주차군경리부 임시건축과를 설치하여 100만 여 평의 대규모 부지를 수용해 나갔는데, 관유지는 무상으로 민유지 및 이전가옥은 헐값으로 매수하였다. 1908년 3월 각 부대의 건축 착공을 시작으로 1913년 11월에 완공되었으며 공사비용은 총 5,159,714원으로 당시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어 영구목적의 나남 기지가 건설되었다. 1910년 나남에 보병 제25여단사령부가 배치되었으며, 보병 제25여단사령부의 임무는 조선 방위의 기본 임무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정보 첩보 활동, 철도 교통시설 보호 등 국경지대의 지리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개 사단 상설체제 결정 이후 제2차 기지 건설공사가 시행되었으며 나남에 제19사단이 주둔되었다. 사단 증설에 맞게 사단 규모의 신·증축공사는 1917년부터 1922년 3월까지 5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나남은 제19사단이 주둔되면서 군기지로서 더욱 공고하게 되어 일본 육군의 최대거점이 되었다. 제19사단의 활동을 살펴보면 대소방위에 주안점을 두고 동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탄압하였으며, 나아가 대륙침략을 위해 동만주 지역에 파견되었다. 이와 같은 중요한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남에 대규모의 군기지가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나남에 견고하고 영구적인 군사시설을 설치하고자 했으며 아울러 군사적 기능이 강화된 시가지를 계획하였다. 나남은 시가지가 형성됨에 따라 군사도시로서의 특징뿐만 아니라 신도시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시가지 전체가 격자형 가로망과 방사형 가로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교통망을 형성하는 교통계획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군사기지로서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간배치 등 도시계획을 한 점이다. 이 외에도 나남은 시가지형성과 함께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군사도시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함경북도청이 나남으로 이전되면서, 이를 계기로 나남은 군사 기능뿐만 아니라 행정 기능이 추가되어 함경북도의 핵심 도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사회기반시설인 철도, 전문화된 학교, 신사 등 주요 기능을 갖는 시설물들을 갖추게 되면서 나남은 군사도시로 시작하여 점점 행정도시로, 교통도시로, 교육도시로, 종교도시로 상호 유기적이며 복합적인 다목적기능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첫째, 일본의 러시아 견제를 위해 나남에 군기지가 구축되었다. 둘째, 나남 군기지는 중국·러시아를 사이에 두고 조선의 식민지를 유지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대륙침략을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기지의 핵심이었다. 셋째, 일본은 나남을 군사적 목적으로 시가지계획을 하여 군사도시로 만들었다. 즉 일본이 나남에 군기지를 건설하여 군사도시를 만든 궁극적 이유는 러시아를 전담하려는 계획과 나아가 동북아에 대한 군사력 지배와 대륙침략을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나남을 처음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핵심 군사도시로서 건설하고자 하였다.
URI
http://hdl.handle.net/20.500.11754/33375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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