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0

정치적 동반자로서 이황과 기대승

Title
정치적 동반자로서 이황과 기대승
Other Titles
T′oegye Yi Hwang and Kobong Ki Taesǔng as Political Companions
Author
김용헌
Keywords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위사공신; 신진 사류; 훈척세력; 사림세력; 문소전; Yi Hwang(T′oegye); Ki Taesǔng(Kobong); Sarim(士林); ‘Wisa’(衛社); Meritorious; Munso-jeon(文昭殿)
Issue Date
2015-12
Publisher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Citation
한국학논집, NO 61, Page. 229-266
Abstract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사단칠정논쟁을 통해 조선 주자학의 이론적 정초를 마련한 탁월한 주자학 이론가이다. 사단칠정을 둘러싼 그들의 논쟁은 7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을 만큼 그들 사이에는 첨예한 이론적 대립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두 사람은 주자학의 완전한 이해와 온전한 실천이라는 학문적·실천적 목표를 공유했고, 더 나아가 인간적 신뢰와 정치의식을 공유한 사이였다. 명종 말에서 선조 초에 이르기까지 신진 사류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고봉은 훈척세력 또는 구신세력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고봉은 퇴계에게 참다운 선비의 길과 출처의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고, 명종에 대한 인성왕후의 복제 문제, 인종의 문소전 부묘 문제와 같은 정치 현안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퇴계는 고봉을 반복해서 오우吾友라고 칭했을 만큼 고봉과 깊은 동류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동류의식은 우선 명종 말년의 정국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그들은 당시 정국을 ‘우리’(사림세력)와 ‘우리를 지목하는 자들’(훈척세력)의 대립 구도로 파악했다. 이 같은 인식에 기반해서 퇴계와 고봉은 학문을 익히고 덕을 닦는 도학자 본연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선조 즉위 이후 그 두 사람은 훈척 정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적극적이면서도 을사삭훈을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등 온건한 입장을 공유했다. 한 마디로 퇴계와 고봉은 삶의 지혜를 서로 나눈 인생의 동반자이자 정치 현안에 대한 인식과 실천 방식을 공유한 정치적 동지였다. Yi Hwang(T′oegye) and Ki Taesǔng(Kobong) had vigorous debates over the issue of four beginings(四端) and seven emotions(七情) for many years. In spite of their theoretical conflicts on the issue, however, they maintained a very friendly relationship each other until T′oegye died. They shared academic and practical purposes such as perfect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Chu Hsi′s thoughts. As one of junior newcomers or the so-called young Saryu(士類) Kobong was in conflict with the maternal relatives of the King or senior officials. In this period Kobong consulted T′oegye about how he should live as a scholar and a bureaucrat. They also had discussions about political issues such as the enshrinement of King Injong’s ancestral tablet at the Munso-jeon(文昭殿). T′oegye felt a sense of intimacy with Kobong enough to call him our friend. Their consciousness of a kind as Sarim(士林) was based on their recognition of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day. They recognized that ‘we’(Sarim group) and ‘people watching us’(the group of the maternal relatives of the King) are inevitably opposed to each other in the late period of King Myeonjong. After King Seonjo came to the throne, both of them insisted on clearing away the legacy of the old days, but didn’t agree to remove the ‘Wisa’(衛社) Meritorious Retainer titles. In a word, T′oegye and Kobong were life companions sharing his wisdom about life and political friends sharing opinions on current issues to each other.
URI
http://www.dbpia.co.kr/Article/NODE06596692http://hdl.handle.net/20.500.11754/29399
ISSN
1738-8902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S](인문과학대학) > PHILOSOPHY(철학과) > Articles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