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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1945년 지방행정제도의 개편과 철도노선의 확장이 가져온 지역거점 도시공간의 변화

Title
1896~1945년 지방행정제도의 개편과 철도노선의 확장이 가져온 지역거점 도시공간의 변화
Other Titles
A study of spatial changes of urban centers from reorganizing local system and extending railroads from 1896 to 1945 : focused on provincial capital cities of Korean peninsular
Author
최지해
Alternative Author(s)
Choi, Jihae
Advisor(s)
한동수
Issue Date
2022. 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본 연구는 1896~1945년의 지역거점 도시공간의 변화를 철도 노선의 확장과 지방 행정제도의 개편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여 한반도 지역 체계의 변화와 도시공간의 특징과 의의를 밝히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일본의 지역 체계의 재편을 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그 의도를 파악한고, 둘째, 철도 노선의 확장과 지방 행정제도의 개편이 지역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파악하며, 셋째, 철도 노선의 확장과 지방 행정제도의 개편이 도청소재지의 도시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분석하고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이다. 연구범위는 1896년 지방 행정제도 개편 시기를 기점으로 1945년까지이다. 공간적 범위로는 1945년 당시 13개 도청소재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조선 초기 한반도를 8도(道)로 나누어 수 백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제도는 개항과 함께 일본의 침투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의 개입으로 1895년 23부제로 개편되면서 조선의 도제(道制)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제도의 실패로 1년만에 다시 도제가 부활하여 1896년에 13도제로 바뀌었다. 13도는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를 제외한 나머지 5개 도가 모두 남·북으로 나뉘면서 13개의 도로 된 것이다. 이 체제는 일제강점기까지 유지되었다. 1895년과 1896년 두 번의 지방 행정제도 개편 당시에도 모두 일본의 적극적인 간섭이 있었고, 1896년 통감부 설치 이후부터 일본은 본격적으로 지방행정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초 일본은 일본이사청이 있거나 일본인 거주민 비율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12개의 부(府)를 지정하였다. 1914년 부제(府制)를 실시하여 부에 대해서 행정적인 독립 권한을 부여하고, 자문기관인 부협의회를 두어 도시개발 및 지역의 제반 사업에 대해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부의 단체장인 부윤이나 부협의회 회원들은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 1930년 부제의 개정으로 부협의회는 의결기관으로 바뀌면서 독립성이 강화되었다. 이때 이후 '부'의 지위는 사실상 '도'와 동등한 위치였다. 지방 행정제도의 개편으로 군과 면의 수가 축소되었고, 군 아래 모든 행정구역 단위를 면으로 통일하였다. 면을 감독하는 면장을 총독부에서 임명하여 지방 말단까지 총독부의 지배 아래 두었다. 일제강점기 지방 행정제도의 변화로 일본인 거주민중에서 상업자본가들은 '지역유지', 즉 지역의 유력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지역개발의 주체이자 개발에 따른 이익의 수혜자였다. 지역개발의 대상지는 주로 일본인 거주지역을 대상으로 하거나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다. 당시 심각했던 조선인들 주택난, 빈곤 등의 문제는 대부분 외면했다. 결국, 누군가에게 도시개발은 엄청난 혜택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무자비한 폭력이기도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순하게 개발과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도시의 변화과정을 설명하시에는 모순적인 식민지 도시개발 방식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화와 중국 대륙진출을 위해 한반도철도 부설에 적극적이었다. 1899년 경인선 개통을 시작으로 일본은 한반도철도 부설권을 차지하게 되었고, 철도 노선확장을 통해 지역 체계 개편을 본격화되었다. 경부선 부설 당시 일본은 경부·경의선 철도부설을 대륙진출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였고, 경부선 부설 전에 다섯 차례 답사를 통해 식민지배를 위한 지역 체계확립과 경제적 수탈을 위한 식민지배를 위해 철도 노선을 결정하였다. 철도 노선의 확장을 보면 도청소재지와 부청소재지의 철도연결 시기가 차이가 났다. 일본이 12부를 지정하여 이를 중심으로 지역 체계를 재편하는데 철도 노선은 강력한 수단이었다. 1910년 강제병합 당시 13개 도청소재지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단 3개의 지역만 연결이 되었고 1939년이 되어서야 13개 도청 소재지에 모두 철도가 연결되었다. 그러나 부청소재지는 일제강점기 초에 모든 지역이 철도와 연결이 되었다. 도청을 이전한 것까지 고려하면 전통적인 거점지역은 철도노선 확장에서 소외되었다. 즉, 일본은 한반도의 철도 노선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거점도시를 출현시키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지역거점의 변화와 쇠퇴를 가져왔다. 일본인의 거주비율이 높은 부청소재지를 중심으로 철도 노선을 확장하고 도청을 이전하는 것은 한반도의 지역 체계를 재편하는 일본의 방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청의 이전 유형을 부의 유무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A 유형인 도·부청 공존 유형은 전통적인 거점지역인 평양, 대구가 해당한다. 이들 도시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간선철도가 부설되었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계획에서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평양과 대구는 개항기부터 일본인들의 진출이 있었고 읍성에서 철도역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시가지에 모여 살았다. 평양과 대구의 철도역에서 성내로 이어지는 직선도로를 중심으로 도시공간이 재편된 것을 확인하였다. B 유형은 부청소재지에 도청을 이전 한 유형으로 경성, 부산, 신의주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경성은 시구개정으로 남대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도로가 개조되고 1920년대 총독부는 광화문 일대에, 경성부청은 대한문 앞 광장에 신축이전 하게 되면서 경성역-남대문-경성부청-경기도청-조선총독부에 이르는 도로축이 형성되었다. 이 도로는 현재까지도 서울의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은 지형적인 문제를 매립을 통해 해결하여 매립지에 부산역, 부산부청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를 중심심으로 공간구조가 재편되었다. 신의주는 신도시로 격자형의 도로구조로 되어있으며 신의도역 서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철도역 부설과 함께 만들어진 신도시로 철도역으로 인해 도로구조가 바뀌진 않았다. 유형 C는 도청소재지에 부를 신설 한 유형으로 함흥, 해주, 전주, 광주, 대전이 해당된다. 이 중에서 함흥, 해주, 전주, 광주는 전통적인 도시였다. 대전을 제외한 4개 도시는 전통적인 거점도시로 A, B유형에 비해 늦은 시기에 철도가 연결되었고, 함흥을 제외한 3개 도시(전주, 광주, 해주)는 지선철도로 연결되었다. 대전은 경부선 부설과 함께 생긴 신도시로 대전역 서쪽에 시가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었다. 신의주와 마찬가지로 격자형의 도로구조로 되어있다. D유형은 도청소재지만 계속 유지한 유형으로 청주, 춘천, 나남이 해당된다. 충청북도와 강원도는 부(府)가 없었던 만큼 일본의 식민지 체계의 전략적 지역발전에서 소외된 지역이었다. A, B 유형 중에서 경성, 대구, 부산, 평양은 일본의 식민지 지역 체계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도시들은 부(府)지정 되어 조선 4대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C, D 유형의 전통적인 지역거점 도시들은 총독부의 정책과 전략에 따라 발전양상이 조금씩 달랐다. 북선 공업화 정책으로 함흥은 비교적 빨리 철도가 부설되고 부로 승격되었고, 전주와 광주는 지방제도 개편으로 일본인들이 행정력을 장악한 이후에 점차 거점 도시로 성장했다. 해주는 철도부설 시기가 늦었던 만큼 철도 노선이 도시 공간을 재편하지는 않았으나 일본의 공업화 정책에 편승한 해주는 병참기지화에 따라 전략적인 거점도시가 되었다. 청주와 춘천은 충청북도와 강원도는 부(府)로 지정된 지역이 없었던 만큼 식민지 정책에 어느 정도 소외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지방 행정제도의 개편은 부(府)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형성하였고 도청의 이전을 통해 식민지 체계의 지역 질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부(府)의 지정 유무에 따라 도시의 변화속도는 달랐다. 한반도철도 노선의 확장도 부를 우선적으로 연결하여 근대 교통과 물류를 통한 경제적 혜택을 받도록 하였고, 전통적인 중심지는 지선으로 연결하거나 아예 연결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근대적 교통물류를 통한 경제적 혜택에서 소외되었다. 또, 지역별로 도시계획을 추진할 때도 부청소재지는 더 많은 예산과 더 간결한 집행과정으로 진행속도가 달랐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일본인 자본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유지들은 도시개발을 조직적으로 추진해나갔다. 1920년대 도시계획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구체적인 도시계획안을 구상하면서 결국 1930년대 시가지계획에도 영향을 준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시구개정에서 시가지계획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연속적인 도시계획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들은 기차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공간이 재편되었다. 도시개조사업이나 시구개정에서도 기차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도로건설이 많았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공간이 재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시마다 철도역이 설치되는 시기에 따라서 공간변화의 시기와 정도의 차이도 발견할 수 있었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28886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86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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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ARCHITECTURE(건축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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