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for the Study of Korean Buddhist History, NO. 5, Page. 4-34
Abstract
한국의 20세기에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문제적 고전으로 재평가되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권상로(權相 老)이다.
권상로는 불교의 권위자로 『삼국유사』를 국역하였다. 그의 원고는 필사로 있다가 사후(死後)에 출판되었는데, 『삼국유사』가 불교 관계 기사를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국역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이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유고간행(遺稿刊行)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 국역본의 간행에는 몇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역강’의 존재 여부와, 1977 년판의 윤문 문제 등이다. ‘삼국유사역강’이 1977년판으로 나왔다는 것이지만, 이 원고는 어떤 경위를 거쳐 완성되었는지, 권상로의 문장대로 가감 없이 출판되었는지 여전 미상(未詳)인 상태대로이다. 이런 문제점이발생한 것은 최초 이 원고가 유고(遺稿) 상태에서 출발한 데 기인하지만, 신뢰성 있는 텍스트가 되는 데에 보다 정교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후대의 책임도 크다. 나아가 권상로 국역본에 실린 ‘해제’이다. 권상로 자신이 쓴 것이 아니요최남선의 해제를 문장만 손질하여 놓았다. 곧 권상로 국역본의 해제는최남선 해제의 윤문인 셈이다. 누가 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생전 권상로는 『삼국유사』를 극찬하였다. 『삼국유사』의 구석구석 자세히훑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길이 거쳐 간 『삼국유사』 국역본이다. 발간경위 등을 보다 정확히 밝혀, 이 국역본이 학문적 텍스트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韓國的20世紀に入って、『三國遺事』は問題的古典に再評價された。ここに關心を持った代表的な人物的中で一人が權相老だ。權相老は佛敎的權威者で、『三國遺事』を邦譯した。彼的原稿は筆寫的末末で、死後に出版されたが、『三國遺事』が佛敎關系記事をたくさん含んでいるという點で、彼的邦譯は長所を持っているし、こ的點が硏究者たちに多く的書手助けになった。ところで、遺稿刊行という事情的ため、こ的國譯本的刊行にはいくつか解けない疑問が殘っている。<三國遺事譯講>的存在可否と、``年版的潤文問題などだ。<三國遺事譯講>が``年版で出たということだが、こ的原稿はどんな經緯を經って完成された的か、權相老的文章ど書り加減なしに出版された的か、末だ未詳である狀態だ。こんな問題點的發生したことは、最初にこ的原稿が遺稿狀態で出發した的に起因するが、信賴性あるテキス蔔になることに、より精巧な努力を傾けない後代的責任も大きい。ひいては權相老國譯本に載せられた<解題>だ。權相老自分が書いてないで、崔南善的<解題>を文章だけ手入れして置いた。すなわち權相老國譯本的<解題>は崔南善的<解題>的潤文であるわけだ。誰がした的か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ない。いつ末でも權相老は、『三國遺事』をほめたてた。『三國遺事』的く末なく詳らかに扱いていた。そんな彼的手長さ經て行った『三國遺事』 國譯本だ。發刊經緯などをより正確に明らかにして、こ的國譯本が學問的テキス蔔的 責務を果たす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