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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언론의 세계관과 국제정세 인식

Title
개화기 언론의 세계관과 국제정세 인식
Other Titles
The Worldview of Korean Press and Their Understanding of International Politic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Focusing on the Period of Russo-Japanese Rivalry, 1896~1904
Author
정종원
Alternative Author(s)
Jung, Jong Won
Advisor(s)
이승일
Issue Date
2022. 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이 논문은 러일 세력각축기 언론의 개혁론과 세계관을 구조적으로 검토하고, 언론의 국제정세 인식의 전개 양상을 언론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개화기의 한국 사상계가 국제사회의 주류적인 사상을 도입하고 있었고, 국제정세에 대한 다양한 해석틀과 외교론을 구비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러일 세력각축기는 독점적으로 한국을 통제하는 열강은 없었지만,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에서 치열한 세력각축을 벌였던 위기의 시기였다. 한국 사상계의 여러계열들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을 창설하여 자신들의 노선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이로서 한국 최초로 언론계가 형성되었고, 근대적 공론장이창출되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언론과 공론장을 통해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였다. 이 시기의 핵심적 과제는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이 생존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사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를 보는 관점인 세계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한국에 대한 개혁론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사상의 상호관계를통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러일 세력각축기 언론계는 한국 내부의 사상계열들과 일본의 침투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의 구마모토 국권당이 한국에 침투시킨 한성신보계열은 한성신보라는 침투언론을 통해 한국의 언론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점진적 문명개화파인 독립신문계열은 독립신문을 통해 한성신보를 견제하였다. 1898년의 독립협회 운동 과정에서 운동 내의 과격파인 제국신문계열은 제국신문을 창간하였으며, 운동 내의 온건파인 황성신문계열은 황성신문을 창간하였다. 러일 세력각축기 언론계는 다양한 사상계열들과 침투세력이 한국의 사상적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현장이었다. 이 시기 언론계의 배경에는 국제정치사상이 있었다. 19세기 국제정치사상은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국제주의와 현실주의를 정당화하는 사회진화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국제주의와 사회진화론은 국제정치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였으나, 모두 한국에 유입되었고, 이는 한국 언론계의 세계관과 국제정세 인식이 다원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언론계에 다양한 사상계열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관과 개혁론에 있어서도 언론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언론계는 크게 문명개화론과 동서절충론으로 나뉘어 있었다. 독립신문계열과 제국신문계열은 같은 문명개화파 계열로서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특히, 두 계열은 만국공법적 국제정치관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만국공법에 의해 규율되며, 국제 공론에 따라 움직인다고 판단했다. 두 계열의 문명관은 서양문명만이 세계적 보편문명이라는 일원론적 문명관에 기초하여, 서양문명을 기준으로 국가들의 등급을 나누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두 계열은 이렇듯 공통점이 많았으나 개혁의 속도와 깊이에 있어 서는 점진과 급진이라는 차이를 보였다. 황성신문계열은 상술한 두 신문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었다. 황성신문계열의 국제정치관은 국제관계가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세력론적 국제정치관이었고, 만국공법을 불신하였다. 황성신문계열은 동서양 문명을 모두 긍정하는 다원적 문명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여러 영역에서 개혁을 하더라도 유교도덕은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의 문명관은 문명개화파와는 구별되는 동서절충적 변법자강 론이었다. 한성신보계열의 국제정치관은 세력론적 국제정치관이었는데, 황성신문계열과 달리 일본의존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동서절충론은 일본이 이미 동양문양과 서양문명을 잘 절충했으니, 한국은 일본을 그대로 배우면 된다는 일 본모방적 동서절충론이었다. 한성신보계열의 세계관은 한국을 일본에 종속적인 국가를 만드는 방향으로 짜여 있었다. 러일 세력각축기 언론의 국제정세 인식의 전개는 이러한 한국 언론계의 다원화된 구성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 언론계는 획일적인 시각으로 국제정세를 인식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계열들이 각기 자신들만의 국제정세 인식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한국 언론계의 외교론도 분화되었다. 언론계는 다양한 국제정세 인식과 외교론을 제시하며 한국을 국제적인 위기에서 구출하려고 시도했다. 러일 세력각축기 언론의 개혁론과 세계관 그리고 국제정세 인식에 대한 이상과같은 검토를 통해 개화기 사상사에서 이 논문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화기 한국에 국제사회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국제정치사상들이 유입되었 음을 되었음을 밝혔다. 둘째, 러일 세력각축기의 언론계에는 서로 다른 사상계열 및 일본의 침투세력이 참여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셋째, 러일 세력각축기의 사상에서 국제정치사상 및 국제정치관이 사상전체의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였음을 밝혔다. 넷째, 자강운동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기원을 보여주었다. 다섯째, 러일 세력각축기 국제정세 인식의 전개 양상을 규명하였다. 여섯째, 언론의 세계관과 국제정세 인식을 밝히는 과정에서 언론계가 일본에 의존적이지 않았음 을 밝혀냈다. 요컨대, 개화기 한국 사상계는 국제적인 사상조류에서 격리되지 않았고, 다양한 해석틀과 외교론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존에 문제로 생각해왔던 사상적인 고립성이나 단일성은 진정한 문제가 아니었다. 개화기 사상의 진정한 문 제는 사상에 대한 주체적이고 유연한 해석의 문제였다. 러일 세력각축기의 국제정세에서는 러시아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사상조류가 러시아 위협론을 주입하자, 한국의 지식인 들은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한계를 보였다. 개화기 사상사는 기민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체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29809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74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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