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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주군의 청년운동 연구

Title
1920년대 경주군의 청년운동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Youth Movement in Gyeongju-gun, in the 1920s
Author
이동후
Alternative Author(s)
LEE DONG HU
Advisor(s)
이승일
Issue Date
2022. 8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일제강점기 경주는 신라의 구도(舊都)로서, 각지에 산재해 있는 각종 고적과 유물들로 인해 식민 권력의 큰 관심을 받았고 고적관광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경주는 식민 당국에 의해 전도유망한 농산지로 평가받았고 감포항을 통해 동해안에서의 어업까지 이루어질 수 있던 도시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경제적 이권을 노리고 경주로 이주하였고 그들은 식민 권력에 힘입어 조선인들을 억누르고 경주군 사회·경제의 전반을 장악하였다. 본 논문은 1920년대 경상북도 경주군에서 일어난 청년운동의 과정과 그 의의를 살펴본 연구이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제의 통치방식이 ‘문화통치’로 전환되었던 시기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민족·사회운동이 일어났고 1920대 초부터 전국 각지에서는 수많은 청년단체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경주군의 청년들 역시 청년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운동에 나섰다. 1920년대 초반 경주군에서는 경주청년회와 경주기독청년회를 중심으로 청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당시 청년회를 주도했던 인물들은 지식인, 자본가 등의 지역 유력자 계층으로 추정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배경을 바탕으로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가 유입되기 전까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었는데 경주군 청년단체들 역시 ‘혁신’의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단체로 변화했다. 강연회, 벽신문 발행을 통해 지역사회에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힘썼으며 동시에 경주청년연맹 창립을 시도하는 등 청년운동의 통합을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이후 1926년 6·10만세운동과 정우회 선언을 계기로 청년운동 역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경주군에서는 민족협동전선의 일환으로 신간회 경주지회가 설립되었고 군내 청년단체들을 망라한 경주청년동맹까지 창립되면서 민족운동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동경의 사회주의 단체 일월회의 기관지 󰡔대중신문󰡕이 경주청년동맹 회관에서 발견되는 ‘경주 격문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경주청년동맹과 신간회 경주지회를 주도하던 인물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경주군의 청년운동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일제에 항거하고자 했던 경주 청년들의 뜻은 이후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경주적색노조와 같은 1930년대의 비합법적 노동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URI
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628048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74477
Appears in Col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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