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학교 축구활동과 국민ㆍ민족 정체성

Abstract

이 논문은 민족과 국민의 경계 사이에서 재일조선인이 내재하고 있는 정체성의 다양화와 중층성을 축구라는 하나의 스포츠를 통해 고찰한 연구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의 오랜 거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본국과의 심리적이고 실천적인 관계를 통해 국민ㆍ민족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시켜왔지만, 두 개의 민족과 세 개의 국민국가 사이에서 외적으로 형성되는 국가적ㆍ민족적 정형화도 겪고 있다. 오늘날 재일조선인 민족 집단(ethnic group)의 경계는 외적 환경의 변화와 내적 다양화로 인해 고정된 형태를 띠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자는 기존의 연구에서 제시해 온 세대, 국적, 이념, 교육적 배경 등의 기준에 따른 분류가 재일조선인 민족 집단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데에는 범주화에 따른 한계를 지닌다고 판단하여 축구라는 하나의 스포츠를 연구의 중심에 두었다. 축구는 재일조선인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본 사회 내에서 조선인의 힘과 우월성을 드러내는 스포츠였고, 민족 집단의 경계를 확인하는 도구적 의미를 지녀왔다. 특히 재일조선인 사회를 유지하고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재생산해 온 재일 조선학교에서의 축구활동은 집단주의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 스포츠 활동이었다. 교문 밖에서 이루어지는 축구 시합에는 두 가지 다른 성격의 것이 있다. 하나는 매년 재일조선인 민족 집단 구성원들이 조선학교나 지역 동포 단위끼리의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서 이러한 시합은 경쟁을 통해 내적 결속을 다지는 기회가 된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공식 시합에 참여하는 것인데 이때 학생들은 일본 학교를 포함한 지역의 대표성과 조선학교에서부터 확장되는 민족 집단의 대표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축구시합에서 대외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면 ‘선물’로 의미화 되는 조국(북한)방문의 기회를 얻는다. 이 실천적 경험들은 기사로 작성되어 재일조선인 사회 내에서 공식화되는데, 학생들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긍정적인 순례로 기사화되는 조국방문과 학생 개개인의 경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교육을 통해서만 배워 온 조국에서 오히려 ‘손님’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손님’이 된 느낌은 학생 시기 북한의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경험처럼 고마움의 감정을 수반하는 것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 ‘어웨이(away)’가 되었던 느낌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국가 단위로 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게임에서의 국가 응원은 국민정체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국민적 소속감, 민족 정체성, 거주국의 불일치를 내재한 재일조선인이 국가를 응원하는 형태는 반드시 국민ㆍ민족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는 않다. 국가 응원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적 상황에 따라 개별적이고 중층적인 기준이 제시될 수 있는 스포츠의 특수한 영역인 것이다. 오늘날 재일조선인 민족 집단이 다양화된 개인적 정체성을 수용하고 통합을 도모하는 방식은 내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일조선인 민족 집단의 경계는 꾸준히 모색하는 과정 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재일조선인의 축구활동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식민지화와 분단의 근대 역사가 여전히 재일조선인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