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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일본질소비료(주)의 흥남 건설과 지역사회

Title
일제하 일본질소비료(주)의 흥남 건설과 지역사회
Other Titles
Heungnam City Construction of Nitchitsu and Local Societies in Korea Under the Japanese Rule
Author
양지혜
Alternative Author(s)
Yang, Ji Hye
Advisor(s)
박찬승
Issue Date
2020-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Doctor
Abstract
이 연구는 일제하 일본질소비료(주)의 부전강수력발전소 설립과 흥남공업지대 건설을 조선총독부・기업・지역사회의 상호관계 속에서 분석하고, 그 ‘개발’의 결과 지역의 정치・경제・사회・공간・환경에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식민지적 특수성 속에서 이익이 기업에 집중되고 피해가 사회로 전가되었음을 밝혔다.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 이래 한국에서 ‘개발’은 민주주의・공공성・지속가능성 등을 뛰어넘는 핵심적 가치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개발의 역사적 전개를 검토하고 그 공과(功過)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일제시기는 한국에서 대규모 개발이 처음으로 추진된 시기이자, 그 과정이 식민통치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일본질소는 일제하 조선 최대의 산업자본으로 대규모 수력발전소와 중화학공업단지를 운영하며 조선 경제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질소의 사업은 그 규모가 컸던 만큼 개발 현지 지역사회에 전면적 변화를 초래했다. 이 연구에서는 일본질소의 사업을 지역사회의 층위에서 분석하고, 일제하 당대의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개발의 경험을 접근하고자 했다. 그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하의 개발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일본질소의 관계는 중층적인 차원에서 형성되었다. 기존연구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라는 일면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야경국가론’과 ‘개발국가론’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그 관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양자는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층위에서 관계를 형성했으며, 그로 인한 파장과 영향 또한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총독부는 산림권・수리권이나 항만의 이용권 등의 공공권리를 일본질소에 배타적으로 부여했고, ‘토지수용령’의 적용과 경찰력을 동원해 지역민을 기존 거주지에서 강압적으로 퇴거시켰으며, 각종 규제법령을 실시하지 않거나 그 적용을 미루어 발전소 인근의 하천의 재난과 공장 인근의 산업공해 발생을 방기했다. 나아가 총독부는 사회사업의 시행권한이나 도시의 행정권한과 같은 정치・사회적 권한 또한 일본질소에 제공했다. 공공・행정 업무를 기업에 외주화 하는 전략을 통해, 총독부는 관련 업무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일본질소는 그 편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에서 형성된 양자의 관계로 인해, 이익은 기업에 의해 사유화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로 전가되었다. 둘째, 일본질소는 개발을 통해 지역 내 최대의 정치・사회・경제적 집단으로 부상했다. 일본질소는 이를 위해 기존 지역유력자를 이용했으며, 그 임직원이 지역 내 행정・공직에 직접 진출했고, 기업도시 흥남의 면적・인구・위세를 강화하기 위해 청원・진정・주민대회운동 등을 주도하는 한편, 기업전략에 기초해 지역공간을 재편하고, 이러한 모든 사업에 비용을 지출하거나 기부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지역 내에서 일본질소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셋째, 일본질소의 ‘성장’과 지역 내 ‘빈곤’의 강화는 동시에 발생했다. 그 개발은 지역사회의 개발욕망과 이해관계를 자극하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지역유력자는 여기에 동조해 일본질소의 개발기회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러나 개발의 이익은 일본질소, 함흥번영회원, 기업도시 흥남과 같은 특정 집단・계층・지역으로 편중되었다. 이로 인해 발전소 건설지에는 화전민들이, 공장지대에는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격증하면서, 개발할수록 지역 내의 상대적・절대적 빈곤은 강화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그 과정과 양상에서 ‘식민지’라는 공간적 특징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동시대 일본에서는 이러한 개발에 따른 사회・경제・생태적 위험과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일본정부・일본질소・지역관청・지역유력자 사이에서 규제와 협력이 이루어졌다. 반면, 조선에서는 개발에 의해 지역사회가 떠안을 충격과 위험을 완화할 사회적 대책들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본질소가 성장할수록 지역 내의 위험과 빈곤은 강화되어 나갔다. 넷째, 전시하에서 흥남비료공장의 제도적・문화적인 민족차별은 지속되었다. 전시말까지도 흥남비료공장의 노동통제원칙의 핵심은 ‘민족차별’이었으며, 전시하에서 민족 간 임금격차는 더욱 증가했고, 임금산정 원칙에는 능력격차보다 민족적 편견으로 인한 격차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총력전과 그를 위한 노동력의 보호가 시대적 과제로 요구되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질소는 노동자의 대량 해고와 민족차별 원칙을 유지했다. 이상을 통해 일본질소의 개발은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일방적 과정이 아니라, 총독부・기업・지역사회의 상호관계 속에서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의 권력・공간・자원을 불균등하게 재편하는 총체적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URI
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23432http://hanyang.dcollection.net/common/orgView/20000043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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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S](대학원) > HISTORY(사학과) > These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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