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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기철-
dc.date.accessioned2019-07-16T02:12:25Z-
dc.date.available2019-07-16T02:12:25Z-
dc.date.issued2007-12-
dc.identifier.citation중국문화연구, v. 11, Page. 313 - 332en_US
dc.identifier.issn1598-8503-
dc.identifier.uri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972605&language=ko_KR-
dc.identifier.urihttps://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07423-
dc.description.abstract혼인풍속은 발전하게 되어 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혼인풍속이 바뀌는 것이다. 殷商시대 이전에는 군혼의 형태이다. 씨족사회 내에서만 남녀결합이 이루어지는 혈족혼과 그리고 다른 씨족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혈족외혼등, 원시적인 군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후기에는 고정적인 배우자로 가기 전단계인 對偶婚의 형태가 등장하면서 개별혼의 양상을 띠게 되고, 일부일처의 혼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殷商시대 왕위계승의 특징은 동생이 형을 승계하는 경우가 많다. 또 왕이 여러 명의 妻를 두었기 때문에 多産을 한 반면 그 자식들 간의 분쟁 역시 빈번하다. 즉 배다른 자식들 간의 위계질서가 쉽지 않다. 그래서 殷商말기 武乙왕이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적통승계이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혼인습속의 개정이다. 周代는 殷商의 적자승계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기초 하에 一夫一妻制를 불변의 법칙으로 삼는 한편, 衆妾을 허용하는 대신에 妻와 妾의 신분차이를 명확히 한다. 周代 혼인풍속의 특징은 혼례의 완비다. 바로 《儀禮》에 기록된 六禮가 그것이다. 《詩經》과 《春秋》의 기록들을 보면 당시에 이미 지배계층에 六禮의 시행이 보편화되고 민간에서도 그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en_US
dc.language.isoko_KRen_US
dc.publisher중국문화연구학회en_US
dc.subject婚姻en_US
dc.subject先秦en_US
dc.subject結婚en_US
dc.subject風俗en_US
dc.subject殷商en_US
dc.subject周代en_US
dc.subject六禮en_US
dc.title先秦時代의 婚姻風俗變遷考en_US
dc.title.alternativeA Study of Development of Marrige Customs during the Era before Qin Dinastyen_US
dc.typeArticleen_US
dc.relation.journal중국문화연구-
dc.contributor.googleauthor김기철-
dc.relation.code2012213935-
dc.sector.campusE-
dc.sector.daehakCOLLEGE OF LANGUAGES & CULTURES[E]-
dc.sector.departmentDEPARTMENT OF CHINESE STUDIES-
dc.identifier.pidkchki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LANGUAGES & CULTURES[E](국제문화대학) > CHINESE STUDIES(중국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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