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대 明宗妃 仁順王后 국상 과정과 특징

Title
선조대 明宗妃 仁順王后 국상 과정과 특징
Other Titles
The Procedure of National Funeral for Queen Insoon during the King Seonjo Period.
Author
윤재하
Advisor(s)
이석규
Issue Date
2019-02
Publisher
한양대학교
Degree
Master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 선조대에 발생하였던 명종비 인순왕후의 국상 과정과 특징들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중기에 발생하였던 개별적인 국상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 왕실에서 행해진 국상의 변천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에 일어났던 왕비의 국상들은 대부분 성종대 제정되었던 󰡔국조오례의󰡕 「흉례」에 기재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인순왕후 국상 역시 대체적으로 󰡔국조오례의󰡕에 명시된 국상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다만 염습의례에 있어서 습과 습전의식을 승하 후 2일째에 시행한 것이 아니라 승하 당일에 시행하였고, 발인의례에 있어서 장사를 승하 후 5개월째가 아닌 4개월째에 진행하였으며, 부묘의례에 있어서 담제를 시행한 달에 길일을 택하여 부묘하였다. 이러한 의례들은 󰡔국조오례의󰡕의 국상 절차대로 행하지 않은 변례를 행한 것으로, 이는 인순왕후 국상 이전에 치러진 국상에서 행해진 조종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한편, 선조는 인순왕후의 국상에서 어머니를 위한 복으로 자최삼년복을 입었다. 인순왕후와 선조가 혈연적 모자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인순왕후를 위하여 자최삼년복을 입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는 혈연적 관계보다 종통적 관계를 더 강조한 것이었고, 주자의 예학을 중시하였던 당대 사림들의 예학사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인순왕후 국상에서 대왕대비인 인성왕후의 복제 문제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 인성왕후는 인순왕후에 대해서 며느리를 위한 복제로 기년복을 입었는데, 당시 조선 왕실에서는 기년복을 입을 때 포대(소대) 30일복을 입는 것이 조종의 전례였다. 그런데 인순왕후 국상 때에 최복으로 30일동안 입는 방식이 채택됨으로서 기존의 조종의 전례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조종전례를 없애고 정례에 따라 기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점은 당시 주자예학에 대한 이해가 발전하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하여 조종전례의 예제를 변화시키고자 한 사림세력의 의도를 보여준다. 인순왕후 국상에서는 대비의 국상에서 신하들의 복제가 기년복으로 정립되었다. 인순왕후 국상 이전 수렴청정을 한 대비의 국상이 두 차례가 있었는데, 각 국상 때에 백관의 복제를 서로 다르게 입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수렴청정을 했던 정희왕후의 국상에서는 수렴청정을 한 공덕을 인정하여 대왕의 예에 따라 신하들이 삼년복을 입고 국상을 마쳤다. 정희왕후 다음으로 수렴청정을 했던 문정왕후의 국상에서는 논의 끝에 신하들이 왕비를 위한 복으로 자최기년복을 입었다. 인순왕후 국상에서도 정희왕후의 전례에 따라 삼년복을 입어야 할지, 문정왕후의 전례에 따라 기년복을 입어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는데, 대신들은 왕비의 예에 따라 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기년복으로 정해졌다. 이후 수렴청정을 한 대비의 국상에서도 모두 기년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인순왕후 국상에서 나타난 신하의 복제논의를 끝으로 수렴청정을 한 대비의 국상에서 신하들의 복제는 왕비에 대한 예에 따라 기년복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순왕후 국상에서 졸곡 후 선조의 시사복을 수정하고자 하는 논의가 있었다. 󰡔국조오례의󰡕에는 졸곡 후 임금의 시사복으로 백의·오모·흑대를 착용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전부터 임금과 신하가 모두 검은 관을 쓰고 일을 보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국조오례의󰡕의 복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에 인순왕후 국상에서 선조의 시사복을 백의·백관·백대로 수정하고자 하는 의견이 있었고, 논의 끝에 백의·백관·백대으로 결정되었다. 인순왕후 국상에서는 산릉수가를 대체하는 예제로서 ‘하현궁시망곡례’가 새로운 예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국조오례의󰡕에는 체백을 장지에 묻으러 갈 때 상주가 산릉에 수가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선 왕실에서는 이를 잘 시행하지 않았고, 궁 밖에서 지송하고 지영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선조는 인순왕후 국상에서 산릉수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예제를 창안하게 되었는데 바로 현궁을 내릴 때 능 쪽을 바라보며 곡을 하는 ‘하현궁시망곡례’이다. 선조는 인순왕후 국상에서 하현궁시망곡례 의례를 처음 시행하였고, 이후 발생한 국상에서의 전례가 되었다.
URI
http://dcollection.hanyang.ac.kr/common/orgView/000000109346http://repository.hanyang.ac.kr/handle/20.500.11754/1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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